라이카와 이카로스(10)







로라스는 생전 처음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답지 않은 처사였으나 하는 수 없었다. 그로서도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음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으려 했다. 그날도 맥주캔은 테이블 한가득 굴러다녔고, 유성우가 떨어지기 시작한 하늘은 근사하게 천문대를 비춰주었다. 연구원들에게도 걸어두는 빗장까지 남김없이 열어젖힐 정도로 취한 드렉슬러가 킬킬대지도 비웃지도 않고 그저 갈망만을 가득 담은 얼굴로 로라스에게 웃었다. 붉은 머리칼 아래 발사대에서 바라보는 청명한 하늘빛을 닮은 눈에 착각해버린 것이다.


저 갈망이 제 것이었다면.


도리어 당해버린 셈이었다. 마치 그가 이상을 향해 빛내는 갈망이 저를 향하는 것만 같아, 저 빛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면.


드렉슬러는 도약을 원했다. 결과는 그에게 중요치 않았다. 그저 두 눈 가득 담고 싶어했다. 아직 뭇사람들이 닿아보지 못한 미지, 광활, 암흑과 찬란함이 공존하는 낯선 세계. 그리고 그 순간에 로라스를 허락할 만큼 신뢰해주었다.


로라스는 그를 배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로라스는 그를 원하게 될 터였다. 막연한 갈망은 순식간에 욕망으로 자라났다. 더 알고 싶었다. 그 웃음을 다시 보고 싶었다.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목소리를 듣고, 그 시선이 저를 향하는 것을 보고, 품에 안아 누구에게도 내주고 싶지 않았다. 그런 것을, 그가 위험하기 그지없는 왕복선에 타도록 자신이 좌시할 수 있을까? 로라스는 자신이 없었다.


정말로 자신이 없었다. 제 죽음이라면 언제고 상관없었다. 그런 곳만을 밟아왔다. 달을 밟은 늙은 우주비행사는 풋내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죽었을 때 시체를 온전히 찾기 힘든 직업이라면 직업을 택하기 전에 숙고하라고. 그것은 공군의 초음속기에도, 우주왕복선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니었다. 그는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로라스의 욕심이었다.


자신의 애욕을 위해 그의 희망을 꺾는 짓은 로라스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갈망하는 상대가 위험한 길을 향하는 것을 보고만 있는 일 역시 고통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로라스는 도망쳤다.


말을 걸지 않았다. 그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그의 주변에서 서성이는 일도 그만두었다. 어차피 그는 일에 집중할 때면 주위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해도 모를 사람이었다. 먼저 걸어오는 대화는 적당한 선에서 끊었다. 차를 관사 주차장에 집어넣고 걸어서 출근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동료에게 빌려주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여름 휴가철이었으므로 그는 믿는 눈치였다. 아쉽다는 듯한 표정을 잊어버리려 애썼다.


그가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이기에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드렉슬러는 뜸해진 대화가 바쁜 탓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연구실에서 작업중인 관측위성은 11월 발사 예정인 리버티에 실려 올라가야 했다. 마지막 테스트를 진행하느라 연구실은 쉴 틈이 없었다. 에어컨 틀어줘서 여기 있는 거예요. 연구원들은 야근을 비꼬아 피서라고 말했다. 더위가 극성을 부릴 시기기는 했다.


로라스는 카페에 앉아 창밖을 건너다보았다. 가장 날씨가 엉망일 시기인 탓에 모기떼가 유리 밖을 점령하고 있었다. 좋은 광경은 아니었다. 코브가 얼음 넣은 잔을 흔들며 말했다.


 “여름만 되면 왜 센터를 여기다 지었는지 원망하게 되죠.”

 “나는 차를 왜 검은색으로 샀는지 후회하게 되더군.”

 “빌려줬다면서요. 다행히 주차장에서 과열로 폭발하지는 않겠네요.”


어느 새인가 연구원들의 음료 취향까지 꿰게 되고 말았다. 드렉슬러는 논외. 스톨리핀과 코브는 에스프레소, 소렐은 카푸치노, 가일은 카페라떼, 앨튼은 사실 드렉슬러와 비슷했는데 가격이 눈치가 보이는지 잘 마시지 않았다. 날이 더워져 물을 부지런히 채워 놓아야 했는데, 요즈음은 연구실에 있기 부담스러워진 로라스가 주로 나서고 있었다.


로라스는 잔을 기울이며 오늘은 또 무슨 핑계를 대고 나가 있어야 할지 고민했다.


 “어, 로라스.”

 “안녕하세요, 치프.”


이 제멋대로인 남자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드립 샀는데, 자리가 없어.”

 “여기 앉게. 나는 들어가서 마시지.”


로라스는 일어섰다. 의자는 둘뿐이라 드렉슬러가 앉을 자리가 없었다. 있었더라도 자리를 피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어깨를 눌러 앉혔다. 로라스는 몸이 닿은 데에 과하게 당황해 도로 앉아버리고 말았다. 드렉슬러가 잔을 든 채 로라스를 훑어보았다가, 말없이 고개를 돌려 연구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정신없이 바라보다 코브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치프랑 무슨 일 있죠?”


코브는 로라스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간단히 넘길 생각이 아닌 듯했지만 얼버무렸다.


 “그다지.”

 “로라스 씨, 착각하시는 것 같아 말씀드리자면요.”


그녀는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는 아무 상관 없어요. 아시잖아요? 연구원들이 치프 날아가는 거 좋아하는 거. 둘이 투닥거리는 거야 우리한텐 뭐 스포츠 경기 같은 거예요. 음, 로라스 씨가 이기는 쪽이 좋으니 주말 만화영화쯤으로 해둘까요?”

 “본론이 뭔가?”

 “그래요, 본론. 로라스 씨, 우리는 연구원이에요.”


손가락이 컵을 문질렀다. 물기가 주르륵 떨어졌다.


 “모르시는 것 같네요. 치프가 너무 처져 있어요.”


그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았는데?”

 “그렇겠죠. 보기보다 자제심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티를 내느니 목을 매는 쪽을 고를 사람이랄까? 어쨌든 이번엔 티가 나서 문제지만요. 능률이 떨어졌어요. 치프답지 않게 엉망이에요.”

 “나는……전혀 눈치채지 못했는데.”

 “계속 치프를 피했잖아요. 그리고 치프는 바닥을 쳤고.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는데, 우리도 치프가 친구 때문에 이렇게 처지는 건 처음 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요.”


코브가 한숨을 쉬었다. 친구라, 로라스는 씁쓸해졌다.


 “로라스 씨, 우리가 왜 저 기행을 다 버티면서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아니, 우리가 왜 다섯씩이나 여기 있는 것 같아요?”

 “……잘 모르겠군.”


혼란스러웠다. 그가 어째서?


 “사실 우리가 좋아서만 여기 있는 게 아니에요. 치프한테는 연구원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치프는 최소한 여섯 사람이 달려들지 않으면 안 될 정도의 성과만을 만들어내니까요. 최소한이요. 베르너가 아무리 천재라 한들 아폴로가 지구 밖으로 날아가기 위해선 240억 달러와 이 연구소 전체가 필요했던 것처럼요. 저 사람 머릿속에 있는 세계는 너무 커서 혼자서는 현실에 끄집어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그게 지금 막혀버렸다고요. 치프가 저렇게 집중을 못 하는 건 처음 봐요. 원인은 아무래도 한 가지 같고요.”


가느다란 손가락이 로라스를 가리켰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빨리 해결되기를 바랄게요. 평범한 치프 밑에 있고 싶어하는 연구원은 없으니까요.”


로라스는 당혹스러웠다. 신경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바쁜 시기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독히도 제 편의대로 생각했던 것이다. 로라스는 그를 끌어내기 위해 노력했었다. 도와주고 싶다는 주제넘은 생각에 수없이 말을 걸고 결국 빗장을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가 자신을 드러내고 로라스에게 기대려는 순간에 도망쳐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제 정념을 숨기기에 급급해, 그것이 그를 지켜주리라는 변명을 스스로에게 늘어놓으며.


착각이기를 바랐다. 가라앉을 감정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 날 그가 열어놓은 빗장은 하나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왔냐.”

 “전 먼저 들어가 있을게요.”


코브는 연구실에 들어가버렸다. 로라스는 연구실 문 옆에 기댄 채 자신을 바라보는 드렉슬러를 어찌해야 할지 망설였다. 그가 피곤한 듯 고개를 털었다. 어쩐지 퀭한 것 같기도 했다. 늘 이랬던가? 피하고 싶었던 감정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야, 로라스.”


그는 부름과 동시에 로라스를 살피듯 바라보았다가, 아주 조금 웃었다. 그러나 곧 고개를 돌려 망설이는 어조로 물었다.


 “내가……뭐 잘못했냐?”

 “자네가?”


로라스는 곤혹스러워졌다. 아니라고 하면 분명 이유를 물을 테고 로라스는 자신이 없었다.


 “분명히 보기 싫다는 것 같은데……말하는 거 보면 아니고……아, 씨발.”


서툴게 사과하려 애쓰는 그에게 사실을 털어놓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자리를 피해야 했다.


 “아니, 아닐세. 그런 일은 없어. 오해하지 말아주게.”

 “정말이냐?”


물어오는 눈을 보며 지난 얼마간 그에게 수없이 거짓을 말했다는 죄책감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로라스는 거짓 하나를 더 얹어놓았다.


 “당연하지 않나. 문제가 있으면 말을 했겠지.”


순간 드렉슬러가 반색하듯 웃어, 로라스는 뒤로 물러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제어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불을 당기는 것인지, 열망은 가라앉을 줄을 모르고 커지기만 했다. 아무것도 모를 그만이 신이 난 듯 다가왔다.


 “그러면 9월에 한번 와라. 8월 31일에 위성 넘기니까. 유성우는 없지만 하늘이 볼만해.”

 “그건…….”


자살행위였다.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당혹스러워하면서도 9월 3일이 그의 생일이었지, 따위를 생각하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기대에 부풀어 기다리는 드렉슬러로부터 로라스를 구원한 것은 전화벨 소리였다.


 “잠시 실례하지.”

 “엉.”


전화벨은 구원이 맞았다. 유쾌한 구원은 아니었으나.


 “뭐야?”

 “롤즈 소령이 은퇴한다는군. 다음 발사의 선장으로 대기조인 나를 쓰겠다는데.”

 “다음 발사라면……리버티?”

 “그래. 내일부터 훈련센터로 나오라는군.”


드렉슬러는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언뜻 스치는 서운함이 사랑스러웠다. 최소한 석 달은 보지 못할 것이다. 착륙하고 다른 미션에 배정된다면 몇 년을 보지 못하겠지. 그때쯤이면 삭일 수 있을까.


미련이었을 것이다.


 “그러면 9월 3일로 하지.”


그는 기뻐했다. 한동안 우주식만 처먹을 테니 잘 먹여야겠네? 농을 치는 것이 싫지 않았다. 임무를 맡았다는 사실보다, 선장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그에게 무엇을 선물할지가 로라스를 들뜨게 했다. 어쩌면, 이 감정을 통제할 수 있게 되면 그에게 두 번째 비행의 이야기를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기뻐하며 다가와선, 어디서도 보여주지 않는 집중하는 얼굴로 자신의 목소리를 기다려줄 것이다. 어느 새인가 로라스는 갈망을 삶의 동력으로 삼고 있었다.


살인적인 훈련이 시작되었다. 우주유영을 할 일이 없는 로라스가 소화해야 할 훈련의 종류는 미션 스페셜리스트들보다 적었으나 책임 자체가 큰 탓에 훈련의 강도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조종실 내부의 모든 스위치를 이해하고 암기했는지 점검하고, 실습 책임자들이 만들어 놓은 수십 가지 사고 시뮬레이션을 통과하고, 착륙비행 연습을 위해 STA 안에서 탈진하도록 조종간을 쥐었다. 선장에게는 생명유지장치를 비롯한 환경시스템을 관리하는 책무도 있었다.


아웃포스트 술집에 끌려가다시피해 맥주 세례를 받기도 했다. 운 좋은 자식, 동기 우주비행사들이 질시어린 축하를 건넸다. 로라스는 언제 무너질지 의심스러운, 낡고 골동품 투성이에다 우주비행사로만 가득한 술집에서 ‘운’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상승이 전부였다. 올라갈 수만 있다면 무엇을 대가로 내놓아도 상관치 않을, 출발이 지연되느니 우주에서 폭발해버리는 쪽을 택할.


그를 가질 수 있다면 선장 자리 따위 아무에게나 주어버릴 수 있을 텐데.


로라스는 웃었다. 이곳의 모두가 갈구하는 왕복선의 금속 의자는 이제 로라스에게도 놓을 수 없는 도구가 되고 말았다. 우주로 가지 못하면 그에게 돌아갈 수 없었다. 그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가져올 수 없었다.


로라스는 비행해야만 했다. 어디서나 그랬듯. 그러나 명령이 아닌 목적이 있는 첫 비행이었다.


 “그게 뭐냐?”


드렉슬러는 천문대 입구에서부터 로라스가 들고 있는 봉투를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알면서 저러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모르는 건지. 로라스가 답해주지 않자 주위를 뱅글뱅글 돌다, 뒤로 물러나 졸졸 따라오기 시작했다. 웃으며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는데,


 “잡았다.”

 “드렉슬러?”


봉투를 낚아채선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아 열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로라스도 내려와 철제 계단에 웅크려 앉을 수밖에 없었다.


 “뭔데 그렇게 숨겨. 궁금해 죽겠잖아.”

 “정말 모르겠나?”

 “응?”


드렉슬러는 이제 와인색 포장지로 감싼 상자를 들고 있었다. 정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어서, 로라스는 열어보라고 손짓을 했다.


 “뭐길래.”


그는 포장지를 조심성없이 잡아뜯었다. 내용물이 설핏 보였는지 로라스를 힐끔 바라보았다. 상자를 꺼낸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뭐야, 설마 나 주려고 가져왔냐?”

 “생일 축하하네, 드렉슬러.”


드렉슬러는 순간 웃음마저 사라지고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뭔가 실수한 건가? 당황해 입술만 달싹이자 그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 그랬냐? 나도 잊어버려서…….”


그는 상자를 끌어안은 채 조용히 계단만 긁다, 문득 떠오른 듯 말했다.


 “어쨌든, 고맙다.”

 “마저 열어보게.”


철야하느라 아내 얼굴 잊어버린 연구원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생일 잊어버리는 연구원은 처음이었다. 싫은 것만 아니라면 무엇이 대수일까. 다행히 그는 상자를 여는 동안 순식간에 쾌활해졌다.


 “야, 넌 천문학자한테 이런 걸 주냐, 진짜.”

 “자네니까 주는 걸세.”

 “진짜 미쳤다, 미쳤어.”


천구의였다. 배구공만한 크기에, 정교하게 그린 성도가 음각되어 있었는데, 검게 코팅한 유리 안에 불을 밝히면 장식용 등처럼 별자리를 따라 빛이 새겨지도록 되어 있었다. 드렉슬러는 성도의 위치가 어긋났다고 트집을 잡으면서도 유리구슬을 들어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로라스는 하단의 고정대를 가리켰다.


 “여기로 충전을 하고, 이 스위치를 누르면 안에 있는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더군.”

 “그럼 별 모양대로 빛나겠네?”

 “그렇지.”

 “이거 충전 돼 있어?”


금세 어린아이처럼 기뻐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고른 것 같군. 드렉슬러는 충전 여부는 들어보지도 않고 냉큼 거실의 불을 끄고 달려왔다. 로라스가 켜 주려 했지만 화를 내 저지당했다. 드렉슬러는 천구의를 제 눈높이로 들어올리고는 스위치를 눌렀다. 방 전체에 번지듯 별자리가 그려졌다. 드렉슬러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 모양을 둘러보았다. 천구의를 돌려 시야에 다른 별이 들어오도록 만들기도 했다. 마음에 드냐고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그는 빛이 가구나 문틈에 걸릴 때마다 웃었고, 천구의 뒤에 손바닥을 펼쳐 별을 쥐듯이 장난을 치기도 했고, 그저 전구의 빛이 새어나오고 있을 뿐인 천구의를 정신없이 들여다보기도 했다.


로라스는 기뻤다. 그가 기뻐하는 모습이 더없이 기뻤다. 밤하늘이 된 방 안에, 그는 별만을 보고 있었다. 자신이 선물한 별에 푹 빠져, 그의 몸에도 작은 별들이 앉아 있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로라스는 그 빛의 조각이 갖고 싶었다. 조심스레 손가락을 얹었다.


드렉슬러가 고개를 돌렸다. 로라스보다 무엇이든 색 옅은 몸 위에 별빛이 한가득이었다. 하늘빛의 눈이 미처 가시지 않은 웃음과 의문을 함께 담고 휘어 있었다. 로라스가 제 어깨 위의 별빛을 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그는 웃었다. 모든 것을 풀어놓고서, 그날처럼.


그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


로라스는 손을 끌어올려 별 가득한 뺨을 끌어당기며 그렇게 변명했다.


로라스는 그를 원했다. 그를 사랑했다.


그의 연인이 되고 싶었다.


사정없이 떨리는 입술에 저를 밀어붙이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원했다. 뺨을 더욱 틀어쥐며, 몸을 끌어안으며 절망했다. 늦었다. 이제는, 정말로.


떨어지는 순간 로라스는 차라리 숨이 끊어지기를 바랐다. 그러나 늦어버린 것을, 로라스는 털어놓으려 했다. 나는,


 “자네를…….”


사랑한다고,


 “꺼져.”


그렇게 말해야 했는데.


 “들어주게, 나는…….”

 “꺼져.”

 “제발, 드렉슬…….”

 “꺼지라고 했잖아!”


무릎을 꿇고라도 애걸해야 했다. 자네를 사랑해. 결코, 결코 그런 의도가…….


의도?


로라스는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았다.


상처입고, 배신당해, 별빛을 틀어쥔 채 괴로워하는 고독이 있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사라질 것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별빛이 벽에 부딪쳐 산산조각나버릴 것만 같았다. 그가 다시 말했다.


꺼져, 다시 오면 죽여버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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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