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8)







 보고 싶지 않다고 하라!


문필가들은 늘 죽음을 노래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슬픔, 비참함, 숭고함, 추악함, 안타까움. 모든 통한과 격렬함이 죽음으로부터 비롯했다. 그것은 마치 수녀들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성교의 고통에 대해 가르치는 것과 같았다. 누구도 죽어보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죽음을 말했다.


로라스는 죽음을 보았다. 그러나 알지는 못했다. 상공에 떠 포격 스위치를 누르는, 포연만이 흐리게 보이는 죽음에서부터 육탄전 끝에 단검을 찔러넣는 죽음까지 로라스는 그 손으로 수없이 목숨을 거두고, 귀로는 죽어가는 이들의 단말마의 비명과 기도를 듣고, 돌아와서는 유족들을 찾아 조의와 유품을 전했다. 그러나 로라스는 죽지 않았으므로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전장 밖에서 노래하는 문필가들도, 전장 속에서 시신을 헤치는 군인들도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것만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진실로, 그것만이 인간이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사실이기 때문이었다.


연인의 사랑이 영원할지, 전장의 자신이 내일도 살아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나 저도, 연인도, 적도 언젠가는 죽었다. 모든 인간이 인종과 국가와 사상을 넘어 공유하는 하나의 진리였다.


로라스는 막사 밖에서 그을린 피부의 민간인과 춤추던 동료를 기억했다. 소위는 자신의 ‘한나’와 두 시간 내내 춤을 추며 우스꽝스러운 노래를 불러댔다. 모두가 그의 몸짓을 비웃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이봐! 병이 옮을 거라고! 외치는 소리는 웃음소리에 묻혔다. 로라스는 미지근해진 맥주를 마시며 웃고 있었다. 모두가 그렇듯, 웃었다. 소위의 ‘한나’는 폭격지에서 주워온 민간인의 팔 한 짝이었다.


그렇기에 로라스는 듣고 있었다. 그날처럼 맥주를 마시며, 이미 죽어버린 동료 연구자를 이야기하는 천문학자의 절규를 들었다. 웃음과 절규는 사실 같은 감정의 다른 표현이었다. 도저히 소화시킬 길 없는 고통. 참혹에 마비된 이성의 도피. 로라스는 스스로의 손으로 끊은 목숨에 대해 속죄하는 법은 알고 있었으나 타인의 고통을 보듬어주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취해 흐려진 의식으로도 그에게서 고통스러운 기억을 끌어내게 한 장본인이 자신이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도와주고 싶다, 그리 생각했다.


소위의 춤이 있고 일주일 뒤, 로라스는 전장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무언가 이유가 있어야 했다. 베테랑 제트기 파일럿을 단지 집에 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풀어줄 군대는 없었다. 그 때 우주비행사 모집 공고가 눈에 띄었다.


 “더는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어.”


드렉슬러는 조용히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승리해야겠지. 승리해야 하는 거겠지. 하지만 더는 죽이고 싶지 않았어……언젠가는 나도 소위처럼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지.”


빛깔 옅은 하늘색 눈이 힘없이 로라스를 향했다.


 “너처럼 말하는 놈은 얼마든지 많아. 그저 안 좋은 경험이었을 뿐이라고……대부분은 좋은 사람들이라고……아냐, 그런 문제가 아냐.”


로라스는 기다렸다.


 “그건 본질의 문제야. 너희는 사람을 죽이는 게 본분이야. 네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든 명령이 떨어지면 쏘는 거잖아. 그러면 네 개인의 의사 같은 게 무슨 의미가 있냐?”

 “MCC에 가본 적 있나?”

 “중앙관제센터?”


고개를 끄덕였다. 드렉슬러는 불쾌한 듯 되물었다.


 “놀리냐?”

 “인터컴의 오디오 기록 말일세.”


그가 미심쩍은 듯 고개를 저었다. 로라스는 처음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어 센터를 안내받다 맞닥뜨린, 수십 년 전에 기록된 그 음성을 잊을 수 없었다. 아마 그 자리의 모두가 그랬을 것이다. 관제사는 차례로 아폴로 1호, 챌린저호의 교신 내역을 들려주었다.


 「불이 났나? 타는 냄새가 나는데.」

 「조종실에 불이 났다!」

 「불이다! 꺼내줘!」

 「불타고 있다! 빨리 꺼내줘!」


통신 시스템 파괴, 아폴로 1호 전소.


 「챌린저호, 스로틀을 올려라.」

 「라져, 휴스턴. 스로틀을 올리겠다.」


챌린저호 폭발, 기록 종료.


첨단기술은 인간을 빠르면서도 고통스럽게 죽였다. 그것은 대가였을까? 로라스는 조심스럽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지. 내가 전장을 떠나……그저 또 다른 전장에 들어왔을 뿐임을.”

 “그건, 로라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결국은 말이네, 우리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주에 도달하고 싶은 거잖나? 장성들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저 고지를, 저 도시를 점령하라 명령할 때처럼. 그걸 막아주는 건 희생의 양도 질도 아닌……그래, 목숨이 아닌 자본이지. 재정만이 우리를 저 죽음 안에서 꺼내주지.”


드렉슬러는 선명히 로라스를 향하고 있었다. 간혹 보이는 저 진지함이 마음에 들었다. 순수한 열정, 완전히 잃어버릴까 깊이 묻어두었던 편린. 그는 무엇이 하고 싶었을까? 미션 스페셜리스트라면 누구나 꿈꾸는 우주유영? 허블을 직접 만지고 수리해보는 것? 그저 상승한다는, 하늘이 점점 칠흑으로 물드는데도 창으로 햇볕이 쏟아져 들어오는 경이와 찬란함?


 “나는 자네가 우주에 가지 않았으면 좋겠군.”

 “뭐?”

 “땅바닥에서 툴툴거리는 게 꽤 볼만하거든. 아, 이건 물론 농이야.”

 “개자식.”


설핏 웃는 것도 같았다. 로라스는 욕설에 대해선 넘겨주기로 했다.


 “아직은 너무 위험해. 셔틀의 안전에 결함이 있다는 건 자네들 같은 과학자가 더 잘 알고 있잖나? 아, 내가 이런 말 했다고 기술자들에게는 말하면 안 되네. 그리고 자네는……그곳에서보단 여기서 할 일이 더 많지 않나? 탐사선들이 사진이라도 보내오면 연구해 주어야지.”

 “그러는 너는?”

 “나야 시키는 대로 오르락내리락해야지, 별 수 있겠나. 죽거든 장례식에나 와주게.”

 “징그러운 소리 한다. 네 장례식에 갈 바에야 리버티를 추모할랜다.”


별이 느릿느릿 자리를 옮겨 있었다. 드렉슬러가 아쉽다는 듯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유성우를 봐야 했는데.”

 “미리 말해주었으면 녹화라도 했을 텐데.”

 “그건 코브가 해.”

 “빈틈이 없군.”

 “그 정도도 못하고 여기 있으면 안되지.”


로라스는 별자리를 눈으로 이어보았다. 탁자 위아래로 맥주캔이 수북했다.


 “언제 한번 내 집에도 초대하지.”

 “내가 왜?”

 “나만 대접받을 순 없잖나?”


드렉슬러는 정말로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던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로라스는 술기운 때문인지 드렉슬러의 관자놀이 근처에 하얗게 색이 다른 머리카락 뭉치를 잡아당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초장부터 서로 눈만 마주치면 화를 내느라 볼 기회가 없었다. 재미있는 일이었다. 정작 스페인 땅은 임무 때문으로도 밟아보지 못한 자신은 라틴계라고 광고하는 듯한 외모이건만 마드리드 출신이라는 저 학자는 피부색이 조금 짙은 것 외에는 이국의 느낌이라곤 전혀 없었다.


 “로라스 너 시간 언제 비는데?”


저 목소리를 빼면 말이다.


 “아직은 모르겠군. 이번엔 내 쪽에서 맞추지.”

 “위성 테스트 들어가면 쉬기 힘들 텐데.”

 “상관없어. 될 때 말하게.”


드렉슬러는 놓아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으며 로라스를 불안히 바라보았다. 의자 옆에 두고 가던데, 라고 사실을 말해줄까 하다 그만두었다. 그는 무언가 두드리다 내려놓더니 통보했다. 7월 26일.


연구원은 확실히 좋은 직업은 아니었다. 우주비행사가 걱정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저런 인재들이 쥐꼬리만한 연봉으로 3주간 휴일이 없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매우 부당했다. 가끔은 초과근무수당이 연봉을 상회한다는 이야기까지 도는 곳이 아닌가. 그리고 아마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우주비행사, 그것도 공군 파일럿이 걱정해줄 것은 못 되었다.


그래서, 드렉슬러가 로라스의 관사 거실을 밟고 내뱉은 첫마디에는 항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소름끼치는 낭만주의자 같으니.”

 “정정해주겠나?”


드렉슬러는 질렸다는 얼굴로 책장을 가리키며 투덜거렸다. 뭐로? 세계 최초로 우주비행사 출신 노벨문학상 수상을 노리는 파일럿?


 “낭만 때문에 두는 게 아닐세.”

 “그러면?”

 “읽으니까 두는 거지.”


사실대로 대답한 것뿐인데 드렉슬러는 끔찍하다는 듯 고개를 털었다. 그래놓고선 금세 책장 앞에 붙어 책등을 살피고 있었다. 정말이지, 낭만이라니. 로라스는 차를 준비해 나오며 생각했다. 낭만이라면 그렇게 거리가 먼 단어도 없었다.


전통적으로 공군은 우주비행사를 천시했다. 초기 제미니, 머큐리, 아폴로 계획의 조종사들은 대부분 해군 출신이었다. 공군의 귀족적, 어찌 보면 낭만적 고집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수족처럼 따라오는 전투기의 감각을 사랑했다. 컴퓨터가 제어하는 우주선에 앉아 실려가는 것은 파일럿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겼다. 공군은 80년대까지도 파일럿의 자존심에 대한 태도를 꺾지 않았으나, 최근에 들어 전투기들마저 파일럿의 손을 떠나자 변해가는 중이었다. 스스로 파일럿을 버리고 우주비행사를 택한 로라스는 신분을 한 계단 내려선 셈이었다.


 “그냥 커피면 되는데.”

 “괜찮은 것이 없어서.”


드렉슬러가 차를 홀짝이곤 거실을 둘러보았다. 자주 오지 못해 물건들은 늘 제자리였다. 책과 옷걸이만이 조금씩 자리를 바꾸었다. 상아색 인조가죽을 덮은 소파 옆이 책장이고, 그 옆에 여닫이가 달린 서랍장 하나, 맞은편이 침실이었다.


 “스페인어 투성이네.”

 “남미도 글은 스페인어로 쓰니까.”

 “보르헤스?”

 “내겐 버겁더군.”


드렉슬러는 차를 주르륵 비워버리며 말했다.


 “네가 좋아할 것 같았는데.”


로라스는 흥미를 느꼈다. 그런가, 말해주겠나? 드렉슬러는 기억해내려는 듯 이마를 긁적였다.


 “만물은 순서가 다를 뿐 결국 죽음과 망각에 도달한다는 거. 죽음만이 확실하다. 네가 허구한 날 떠드는 거잖아?”


어떻게?


 “그런데 그런 이야기도 하지. 결국 펜 끝에서 기록으로만 남기에 세상은 하나의 책이다. 그러니 너처럼 기록도 안 될 양반이 미간에 주름 만들어 봤자 소용없단 거야.”

 “마치 자네는 남을 것처럼 말하는군.”

 “당연한 거 아니냐? 난 천재인데.”


어처구니가 없어 웃어버렸지만, 그가 한 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는 알았다.


그러면 자신은 무엇을 하려 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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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