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11)






몸이 떨렸다. 무엇 하나 통제가 되지 않았다. 손가락이 아프도록 유리를 틀어쥐었다. 그가 자신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닿아 있는 것은 분명히 입술이었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고, 무언가가 끓어넘쳤다. 뜨거웠다. 드렉슬러는 이러한 감각을 하나밖에 알지 못했다. 분노.


그는 금방이라도 오열할 것만 같은 표정으로 제게 변명하려 했다. 뻔뻔하기 그지없었다. 소리를 질렀다. 그의 뻔뻔함에, 잘도 자신을 속여온 그에게, 그것을 모르고 시시덕거린 자신에게, 통제를 벗어나버린 세상과 감정과 모든 것에게. 소리를 지르고 목이 쉬도록 꺽꺽거렸다. 네가, 로라스, 네가…….


암흑 속에서 별빛이 추락했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밤하늘을 부수었다.


드렉슬러는 저도 모르게 주저앉아 별을 감싸쥐려 애썼다. 정신없이 유리구슬을 움켜쥐고 문질러보았다. 페르세우스자리 방향에 금이 가 있었다. 균열에서 빛이 흉하게 흘러나왔다. 아, 드렉슬러는 탄식했다. 붙들고 있었는데, 깨지면 안 되는데…….


어째서?


그가 준 것이었다. 어째서 그때 던져버리지 않았지? 드렉슬러는 금가버린 천구의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아름다웠다. 균열에 손을 얹었다.


그가 준 것이었다.


공군 대위도, STS-145 미션의 선장도 아닌, 알베르토 로라스가 자신에게 준 것이었다.


그가 준 것이었기 때문에.


드렉슬러는 절망했다.


그를 원했던 것이다.


천구의를 놓아버리면, 이대로 그를 끌어안아 버릴 것만 같아 몸이 달았던 것이다.


그를 원했다.


무너져버린 이성 아래 열기는 분노가 아니었고, 손은 뒤늦게 갈라져버린 틈을 메우려 애썼다. 아니, 아니야, 드렉슬러는 중얼거리며 깨진 별빛을 끌어안았다. 그는 없었다. 다시는 안아주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과 별을 보아주지 않을 것이다. 다시는 자신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도 않을 것이다. 다름아닌 드렉슬러 자신이 그를 거부했으므로. 그는 자신을 아꼈기 때문에, 어리석도록 자신의 말을 지켜줄 것이므로.


드렉슬러는 그가 선물한 별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나는 참 빌어먹을 천문학자지. 늘, 왜인지 늘 갖고 싶은 것만은 가질 수가 없어. 갖는 게 다 뭐야. 닿을 수도 없어. 하다못해 보고라도 싶었는데, 너까지도 내 손으로 별처럼 만들어버렸어. 멀어져버렸어. 닿기엔, 가지기엔 너무 멀어져버렸다고. 교통사고야 개같은 소장을 욕하면 되는데, 너는 어쩌면 좋지.


모든 것이 늘 멀었다. 새 인생을 살게 해줄 타국, 우주비행사 선발을 위해 밟던 절차, 결국 관측소에서 바라보아야 했던 별, 망원경과 컴퓨터를 거치고서야 손에 들어온 성운의 사진.


그렇기에 이해할 수 없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늘 그가 있었다. 지상의 삶을 사랑하면서 끝없이 비상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남자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드렉슬러의 삶에 비집고 들어와 모든 것을 들어주곤 제 것마냥 삭이려 애썼다. 떨어져나가리라 생각했다. 흉터를 드러내며 이를 갈면 누구나 그랬다. 그는 이상했다. 정면으로 맞서면서 한 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그를 사랑한다. 평생을 사랑해온 별빛처럼. 그런 이였기에, 얼마가 걸려도, 영원을 바치더라도 꺾이지 않고 달려와줄 것을 믿었기에.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를 얻을 수 있었던 단 한번의 기회는 자신이 스스로 부수어버리고 말았다.


사랑해, 로라스.


드렉슬러는 영원히 할 수 없게 된 고백을 별 안에 숨겨넣었다.


그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STS-145의 발사예정일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가 이상하게 굴던 얼마 전을 곱씹어보곤 했다. 유난히 자신을 피하는 것 같아 답답했었다. 그 때 알았더라면. 그가 드렉슬러를 원한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치프?”


스톨리핀이었다. 그가 커피를 내밀었다. 늘 마시던 대로였다. 드렉슬러는 그것을 한참 내려다보았다. 그였다면, 로라스였다면.


괴로웠다.


 “치프……?”


커피를 연구실 구석 개수대에 쏟아버리고 돌아섰다.


 “다음부턴 드립으로 사와.”


대답은 듣지 않았다. 자신은 천문학자였다. 평생을 이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 것이다. 하늘에 흩뿌려진 수억의 별무리에 하나가 더해진들, 자신이 그곳에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이 바뀌지는 않았다.


이따금 리버티호의 미션 스페셜리스트가 다녀가기는 했다. 연구원들은 로라스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션 스페셜리스트나 페이로드 전문가와 조종사는 완전히 성격이 다른 승무원이었다. 연구원들이 건너다보는 모양새가 드렉슬러가 연락해주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드렉슬러는 그 때마다 성도에 정신이 팔린 척했다. 그러고 보면 꽤 친했지. 커피를 들이켰다. 씨발, 잘못 내렸잖아.


혼자서 집에 갔다. 그것이 그렇게 이상했다. 우스운 일이었다.


택시를 보내고 잠금장치의 암호를 바꾸었다. 병신 같았다. 계단을 오르며 로라스를 초대하려 사두었던 식료품이 떠올랐다. 냉장고에서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내치기도 귀찮았다. 방문 암호도 바꾸었다. 거실 불을 올렸다. 천구의가 보였다. 스크랩해둔 자료들 사이에 놓여 있었다. 케이블을 꺼내 충전기를 연결해두고 옥외로 올라섰다.


구름이 많아 좋은 날은 아니었다. 드렉슬러는 이곳을 5년 전에 얻었다. 경영난에 처분을 고민하던 바보에게 적당히 공갈을 쳐서 헐값에 얻은 건물이었다. 애초에 사람이 오지 않아 망한 천문대이니만큼 드렉슬러가 주차장을 밀어버리고 정문에 보안을 걸자 순식간에 인적이 끊겼다. 연구소 봉급으로는 세금 내기가 영 마땅찮기는 했다. 아래층 헐어버리고 여기만 남기면 딱 좋겠는데.


혼란스러웠다. 학자로서의 자신은 통제할 수 있었다. 멍청하게 구는 것은 한번으로 족했다. 리버티에 실릴 위성은 완벽해야 했고 실제로도 완벽했다. 문제가 발생한다면 당당하게 걷어차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그러나 펜과 키보드를 놓는 순간 머릿속은 번개 맞은 계기판마냥 엉망이 되었다.


드렉슬러는 새벽이 깊어 내려왔다. 충전기가 초록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거실의 전등을 끄고 구슬을 안아 침대에 앉았다. 스위치를 눌렀다. 별이 방 안 가득 들어찼다. 따뜻하네 이거. 중얼거리며 웅크렸다. 가을이 중턱에 걸려 있었다.


 “로라스 씨!”


연구원들은 기어이 로라스를 연구실로 불러냈다. 드렉슬러는 자리에서 고개를 돌린 채 그날도 맛이 글러먹은 커피를 연거푸 들이켰다. 로라스도 이쪽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앨튼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렇게 빨리 선장 되는 거 로라스 씨가 처음 아니에요?”

 “음……아닐세. 78년 기수에 더 빠른 사례가 있었…….”

 “그냥 축하하는 거잖아요. 이럴 때는 그냥 웃어요.”


코브가 힐난하듯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멋쩍어할 표정이 보지 않아도 뻔했다.


 “축하해요. 맥주 엄청 마셨겠네요?”


가일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딱 STS-145예요? 운명이네, 운명.”

 “그야 STS-145 예비조였으니까. 애초에 이 연구소로 배정해준…….”

 “어머, 우리한테 연구소 관례 설명하시는 거예요?”

 “이런, 사과하지.”


소렐, 다시 코브. 웃음소리. 드렉슬러는 남은 커피를 전부 마셔버렸다.


 “각 잡고 사과하지 마세요. 죄 지은 기분이라구요.”

 “맞아, 고해성사 해야 할 것 같아.”

 “넌 무신론자잖아, 소렐.”

 “나도 죄책감이란 건 있다고.”


어쩌면.


 “어쨌든 축하해요.”

 “축하해요. 선장이라니 정말 빠르다니깐.”

 “우리 위성도 잘 부탁하고요.”


한 번 정도는.


 “맞아, 치프가 저거 프로그램 고치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잘 아시잖아요?”

 “그러고 보니 치프는 거기서 뭐해요?”

 “그렇네, 치프, 치프도 한마디 해야죠. 우리가 그동안 뼈빠지게 고생한 거 우주에 가져다주실 분인데.”


내게도 기회가 있지 않을까.


 “치프, 여기 오라니까요.”


여기서 너를 데리고 나가서, 전부 털어놓으면, 그러면 한번쯤은…….


 “소렐……?”

 “어서요, 한마디 해줘요.”


떠밀린 곳에는 로라스가 있었다. 단정한 차림에, 표정을 감춘 얼굴을 하고서 드렉슬러를 보고 있었다. 파랗고 맑은 눈은 그날과 달리 매서웠다. 앨튼이 재촉했다.


 “어서요, 선장이라잖아요. 대단하다구요!”


그래, 선장……선장이니까, 그 이야기만이라도…….


선장.


드렉슬러는 아득해졌다.


 ―내가 장담하는데, 네가 선장이랍시고 조종간 잡으면 리버티 터진다.


그저 도발하려던 허언이,


현실의 공포가 되어 드렉슬러를 사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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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