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9)







“로라스?”


퍼뜩 정신이 들었다. 드렉슬러가 찻잔을 두드렸다.


 “차.”

 “아, 미안하네.”


잔을 들고 일어섰다. 차를 채워 돌아왔을 때 드렉슬러는 거실 한구석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로라스는 문득 초대하기엔 초라한 집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천문대 꼭대기에서 보는 유성우에 비하면 어느 살림집이 초라하지 않을까마는. 그래도 차가 비었을 때 따라줄 다기 한 세트 없는 관사는 그에겐 퍽 지루하겠지, 하는 생각에 멋쩍어졌다. 드렉슬러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거 뭐냐?”


로라스는 고개를 돌렸다. 잡동사니를 쌓아두는 선반이었다.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어 일단 골라보았다.


 “음반?”

 “아니 그 옆에, 갈색 서류봉투 속에 있는 거.”


서류봉투?


 “아, 훈장 말이군.”


순간 드렉슬러는 로라스를 흑사병 환자 보듯이 바라보았다가,


 “미친놈.”


하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무례하기 그지없는 언사였으나 웃음소리가 경멸보다는 경쾌함이었기에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무엇이 그리 우스운지는 알 수 없었으나 하도 즐거워하는 것 같아 그냥 놓아 두었다. 한참을 웃던 드렉슬러가 눈가를 슥 닦았다. 눈물나게 웃었네, 고오맙다 미친놈아.


로라스는 조금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습지? 드렉슬러는 당황해하는 로라스의 얼굴에 또 웃음을 터트렸다. 광대라도 된 기분이군. 로라스는 차를 마시려다 사레에 들렸고 드렉슬러는 숨이 넘어갈까 걱정될 정도로 웃어댔다.


 “너 나 웃겨 죽이려고 불렀지?”

 “대체…….”


쿨럭.


 “풉.”

 “뭔가, 난 도저히…….”


쿨럭.


결국 로라스는 부엌에서 물을 마시며 사레를 진정시키고야 다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드렉슬러는 더없이 즐거워 보였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그 사이에 드렉슬러가 차를 다 마셔 버려, 로라스는 찻잔을 채워주기 위해 다시 일어서려 했다.


 “아냐, 됐어.”

 “마음에 들지 않나?”

 “그러면 두 잔이나 마셨겠냐? 그냥 목이 안 말라서 그래.”

 “그렇군.”


너나 사레 다시 안 들리게 조심해라. 드렉슬러는 빙글 웃었다. 로라스는 그 얼굴이 묘하게 낯설었다.


 “말해주지 않을 건가?”

 “뭐를?”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네가 사레 들린 거?”


어쩔 줄 몰라하는 로라스를 보며 드렉슬러는 다시 킬킬댔다. 알아, 안다고 멍청아. 그는 선반을 가리켰다.


 “갖다줘봐.”


로라스는 별 말 없이 봉투째로 건네주었다. 드렉슬러는 그 모습이 신기하다는 듯 로라스를 주시했다. 봉투를 건네주자 그는 그것을 탁자 위에 주르륵 쏟아놓았다. 케이스와 함께 금속이 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드렉슬러는 별 모양의 주물에 성조기 도안의 리본이 짧게 매어진 훈장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딜 가나 생긴 건 비슷하네.”

 “눈에 띄어야 하니까?”

 “언제 받았냐?”

 “기억이 잘 안 나는군.”


드렉슬러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는 탁자 위에 흩어진 것들을 봉투에 잘 담아 돌려주었다. 로라스는 그것을 소파 옆에 놓고 다시 물었다.


 “그래서, 언제 말해 줄 건가?”

 “너는 진짜 이상한 놈이야.”


로라스는 여느 날처럼 되돌려주었다.


 “자네만 할까.”

 “난 똑똑한 거고, 넌 이상한 거야.”

 “그 머리로 내게 납득이 가도록 설명 좀 해주겠나?”


드렉슬러는 킬킬거렸다. 천재로 산다는 건 피곤하지, 넌 멍청해서 모르겠지만. 로라스는 그가 계속해 웃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절망에 기반한 광소와 즐거움을 구분할 줄 알았다. 드렉슬러는 소파에 몸을 묻으며 입을 열었다.


 “나는 있잖냐.”


거실이 더없이 조용해졌다.


 “네가 한번쯤은 설교하려고 들 줄 알았다. 아니, 처음부터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 뻔한 것들 있잖냐, 우리가 있어서 너희가 안전한 거라든가, 우리가 말도 모르는 나라에서 죽어가는 동안 너희는 놀고먹지 않았냐거나.”


로라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런데 네가 한 첫마디는 ‘나’였어. 우리도, 군대도, 하다못해 미합중국도 아니고 ‘나’. 그것도 군인으로서의 네가 아니고 조종사로서의 너. 거기에 사는 이야기를 하더군. 살려서 데려오겠다고, 안전하게 하겠다고. 너도 좀 웃겼지? 어차피 제어는 관제소에서 하잖아? 그런데 무슨 일이라도 나면 네가 다 책임져야 할 것처럼 굴더라고. 아마 정말로 그럴 것 같네. 사고나란 소린 아니다. 치지 마.”


드렉슬러가 장난스레 방어하듯 팔을 들어올렸다. 로라스는 살짝 웃었다.


 “넌 낭만주의자야. 네 입으론 아니라고 하지만 낭만주의자라고. 왜냐면 낭만주의자 놈들은 세 가지 이야기밖에 안 하거든. 죽음, 사랑, 기억. 그런데 넌 입만 열면 죽는 이야기잖아. 난 네놈이 그래서 멋지게 죽고 싶은 줄 알았어. 그런데 그것도 아니지 뭐냐.”


그가 입을 다물고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체념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때……연구실에 불났을 때 빠져나오지 못했으면 어쩌려고 했냐? 난 네가 내게 생색내려고 그런 줄 알았지. 아니더라고. 넌 그냥 사고회로가 그런 놈이더라고. 마치 네 눈 앞의 모든 산 것들이 네게 명줄을 맡기기라도 한 것처럼. 내가 본질 얘기했던 거 기억나냐? 군인의 본분은, 군대의 본질은 죽이는 거라고. 너는 거기에도 반박하지 않았어. 그저 죽음이 어디에나 산재한다고 말했을 뿐이지. 네가 어디서 뭘 하든 네 본질은 요컨대 그거더군. 살리는 거, 지키는 거. 네 소속은 네 본질을 못 바꿔. 그러니 훈장이 쓰레기마냥 선반에 처박혀 있는 거지. 사람 쏘고 받은 칭찬 따윈 네게 의미가 없을 테니까.”


나는 말이다, 드렉슬러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네가 정말 이해하기 힘들었어. 으음, 아냐, 이해하기 힘들다기보다는 너무 이상한 놈이라 인정하기가 힘들었지. 그래,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내 인생에 좋은 군인 따위는 없었어. 고지식하지 않은 조종사도 없었지.”


으으, 그는 머리칼을 헤집었다.


 “넌 괜찮은 놈이야. 네가 하필 군인이고, 조종사라는 걸……떠나서. 씨발, 이게 왜 이렇게 힘들었는지.”

 “다행이군.”


로라스는 겨우 웃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편해 보여서.”


드렉슬러는 어처구니없어했다.


 “속도 좋아.”

 “자네야말로.”


웃어버렸다. 어린아이라도 된 듯이 웃어댔다. 드렉슬러는 욕을 하다가도 미친 듯이 웃었고 로라스는 차를 채워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도 웃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공허하지 않은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야, 배고파. 드렉슬러가 킬킬거리며 늘어졌다.


로라스는 한 시간 만에 드렉슬러에게 욕이란 욕은 전부 얻어먹어야 했다. 그러나 손을 들 수도 없었는데, 요지는 로라스가 만든 식사가 끔찍하게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드렉슬러는 ‘그것’이 우주왕복선의 건조식보다 맛이 없다고 혹평했다. 반박하고 싶었지만 스스로도 잘 알 수가 없어서, 결국 저녁식사는 차를 끌고 레스토랑을 찾아보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드렉슬러는 그것을 출근하기도 전에 메신저로 연구실 전체에 소문냈고, 로라스는 한동안 요리해보지 않겠느냐는 연구원들의 실험대상 보는 눈길을 피해다니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큰 결심만큼 크게 바뀐 것이 있었냐 하면 아니었다. 드렉슬러는 여전히 운전을 하지 않았고 로라스를 택시쯤으로 취급했으며, 로라스는 드렉슬러가 말을 하다 옆길로 새어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면 입을 막아버렸고,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문학 취미를 조롱하기를 그만두지 않았고, 로라스는 가끔씩 휘핑 위에 시럽까지 두 배로 뿌려 드렉슬러가 괴로워하는 꼴을 고소하게 지켜보았다.


그렇더라도 서로에게 어떤 악의가 있는지 탐색하는 무의미한 시간을 덜었다는 것만으로도 일상은 한결 수월해졌다.


 “대단하군.”

 “당연하지, 누가 설계한 건데.”


드렉슬러의 두 번째 초대를 부담없이 수락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스톨리핀에게 물어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가 있는 날이라는 것도 알아두었다. 그답다고 해야 할지, 나름대로 신경을 써 주는 거라고 해야 할지.


두 사람은 드렉슬러가 설계한 관측 프로그램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드렉슬러는 그 이후로 가끔씩 자신의 성과에 대해 상세하게 늘어놓았는데, 그것은 청중을 찾는 이야기꾼들에게 둘러싸여 살던 로라스에게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창작물을 평가받고 싶어하는 재능 있는 사람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고독한 자들. 하지만 개중에도 드렉슬러는 유난히 뛰어난 이였고, 신이 나 설명할 때의 표정이 즐거움에 들떠 있어 로라스를 흡족하게 했으므로 성심껏 집중할 가치가 있었다.


 “그래도 역시 아쉬운 건.”


드렉슬러가 맥주캔을 뜯었다.


 “사진은 사진이고 실물은 실물이란 건데.”


관사의 일 이후로 드렉슬러는 로라스가 조리하는 근처에 나타나기만 해도 치를 떨었다. 로라스의 존재가 음식 맛을 떨어뜨린다는 비과학적 주장까지 내놓았다. 오늘도 굽는 것 정도야 할 수 있겠지, 하고 제안했다가 산업폐기물 취급을 받은 차였다. 로라스는 보기좋게 구워진 비프롤을 찍어 먹으며 그래도 우주식에 비교하는 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올라가도 수만 광년 떨어져 있다는 건 똑같잖나.”


드렉슬러가 고개를 저었다.


 “너도 알잖아. 대기도 없고.”

 “경험담을 요구하는 거라면 수기를 읽으면 될 텐데.”

 “그런 건 날조잖아. 야, 빨리 말해 봐.”


그가 캔 하나를 단숨에 들이키더니 내려놓았다. 빨리. 저 작자는 가끔씩 어린아이처럼 요구한다. 로라스는 돌려 말하기 시작했다.


 “제트기를 타면.”

 “T-38?"

 "아니, 공군 시절 말이야.“

 “개자식아.”


툴툴거리며 캔을 찾기 시작한다. 듣기는 들을 모양이었다.


 “전투기가 떠오르면 모두가 나를 바라보는 것이 느껴져. 내가 쏘아야 할 표적, 그 주변의 적과, 내가 지나갈 경로의 민간인과 어쩌면 이 그림자 아래 민간인의 전부가 나를 바라보는 거야, 증오를 담아서.”

 “적이니까.”

 “이상한 건, 우주왕복선을 탈 때도 그렇다는 거야. 볼트가 떨어져나가고 세 엔진의 추력이 우리를 밀어내는 순간, 폭발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음속을 순식간에 돌파해버리는 그 순간에……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도 느껴지더군. MCC로부터 연구소에서, 해변에서, 어딘가에서 이 항해에 걸고 있을 터무니없는 기대들이.”


날이 더워서인지 맥주가 금방 미지근해졌다. 몇 모금 들이키고서 말을 이었다.


 “만인의 기대와 만인의 증오 중에 무엇이 나을까?”

 “둘 다 똑같아.”


즉답이었다. 흥미로웠다.


 “어째서지?”

 “등에 짐덩이를 주렁주렁 달고 날아오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추락하는 거라고. 끊고 날아가버리지 못하고.”


궤도비행을 추락이라고 묘사하는 사람은 또 처음이었다. 지구 중력으로부터 완전히 이탈해야 된다 이건가.


 “우주미아가 되고 싶진 않은데.”

 “죽으려면 우주가 좋겠지.”

 “글쎄.”

 “넌 낭만주의자잖아.”

 “낭만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거라고 자네가 말하지 않았던가?”

 “너 잘났다 새끼야.”


드렉슬러는 금세 뿌루퉁해졌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어지간히 올라가보고 싶은 모양이었다. 로라스는 그야말로 저보다 더한 낭만주의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로라스가 얼마간 말을 않고 맥주만 마시자 금세 조르기 시작하는 것만 봐도 그랬다.


 “말해줘.”

 “자네가 아는 것들뿐이야.”

 “내가 설마 수치 따위를 묻겠냐.”


로라스는 오늘 그의 태도가 퍽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자네가 수치를 따위라고 말할 줄은 몰랐는데.”


드렉슬러는 맑게 반짝거리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이 너무도 많아 감히 칠흑이라 칭할 수 없는 지구의 밤하늘. 그것은 우주에서 바라본 공허와는 확실히 달랐다.


 “수치는 도구야. 중요한 건 상승이라고. 비약. 상상마저 뛰어넘어서, 이 땅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까지 가는 일.”

 “좋은 말이군.”

 “그러니 말해봐. 넌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 하잖아.”


호기심에 가득차 바라보는 눈길. 로라스는 포기하고 말았다. 맥주를 새로 집어들며 기억을 되감아보았다. 발사대가 추력에 못이겨 선체를 놓아줄 때의 공포와 환희의 교차, 고도 40㎞에서 연료탱크가 분리될 때의 엄청난 충격, 어두워지는 하늘과 선명해지는 햇빛, 이륙 10분 후 아래로 펼쳐지는 모성의 모습, 암흑 사이에서 점점이 빛나는 별과 행성, 오로라, 일출, 2시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돌고 있다는 기묘하고 비현실적인 감각.


드렉슬러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로라스는 그가 그 정도로 무언가를 집중해 듣고 있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더 말해 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쉬움마저 느꼈을 정도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로라스는 자신이 진실로 느꼈던 것을 털어놓았다.


 “아름답지……분명히 아름다워. 하지만……이 잠깐의 체류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지?”


그러나 모든 번민이 무색하도록 그는 즉시 답을 내놓았다.


 “그건 우리가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냐. 미래의 영역이지.”


로라스는 경악에 가까운 충격에 휩싸였다. 그가, 어째서 그가?


그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 말을 이었다.


 “예전에 스푸트니크가 처음 궤도에 올라가는 것을 보며 두려움에 사로잡힌 철학자가 있었지. 인류는 우리에게 생명이라는 불가해한 선물을 주고 키워준 지구로부터 탈출하려 하는가, 이 어머니를 감옥이라고 여기며 벗어나려 애쓰는가, 하고서.”


그건 미래를 위한 일이란다.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어 소식을 알렸을 때 어머니가 로라스에게 건넨 말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비록 발사 지연이 거듭되는 사이 쇠약한 그녀는 리버티가 이륙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어째서?


 “그런데 말이다, 로라스.”

 “말하게.”

 “인간이란 날 때부터 그런 족속들이야. 숨조차 쉴 필요 없는 안락한 태내에서 굳이 도망치느라 모체를 찢어놓고, 집 안에서 동네로, 학교로,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다른 대륙으로. 끝없이 자기 세계를 확장하고 싶어해. 그건 본성이야, 반역이 아니고.”


드렉슬러는 로라스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과 달리 확신에 차, 아직 닿아보지 못한 세계로 저를 확장하려 갈구하며.


 “우리는 뱃길을 닦아. 수백 년 전의 항해사들이 그랬듯이. 그 사람들은 그저 배를 타고 둘러보았을 뿐이지. 나라를 세우지도 부를 가져오지도 못했어. 하지만 그 후에 태어난 인간들에게 세계는 두 배로 넓어졌지. 우리 다음의 세대는 세계에 우주를 넣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는 거지.”


그는 웃었다. 로라스는 어지러웠다. 제 손으로 쥐지 못할 영광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끝이 보이지 않을 길을 단지 가능성만으로 걷겠다고? 무언가가 송두리째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드렉슬러는 길게 펼쳐진 은하수를 돌아보았다.


 “나는……올라가면 지구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아. 고개를 돌려서, 광막을 볼 거다. 구름이나 먼지에 가리지 않고, 수천 수만년 전부터 꺼지지 않고 곧장 달려온 빛들을 볼 거라고.”

 “그때엔 자네가 내게 설명해주면 되겠군.”

 “말로 설명이 되면 올라가서까지 보려고 하겠어?”

 “직접 보고 결정하지 그러나?”


드렉슬러는 로라스가 낯설어하는 얼굴을 했다. 편안해하는 부드러운 웃음. 로라스는 이제 그것이 신뢰라는 것을 느꼈다. 밤하늘 아래 한낮의 외모를 한 학자는, 이루지 못할 동경과 이상을 담고 로라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같이 가지 뭐. 넌 선장 하고, 난 MS하고.”


마치, 믿고 맡기듯이.


로라스는 깨달았다. 자신은 그와 비행할 수 없었다. 무너져내린 감정과 오해의 잔해가 목을 졸라왔다. 그러나 너무도 확실했다. 설령 그가 애원하더라도 불가능했다.


마음에 품은 이를 사지에 함께할 어리석은 자는 없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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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