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12)






 “안녕하십니까.”

 “아, 왔군.”


로라스는 롤즈가 가리킨 자리에 앉았다. 센터 근교의 조용한 카페였다.


 “물품을 정리하다가 문득 자네 생각이 나지 뭔가.”

 “리버티호의 일입니까?”


롤즈는 웃었다.


 “우주왕복선들은 자동차나 전투기와는 달라. 아무리 몰아도 내 것이 되어주지 않는다네. 그건 반은 신의 영역이고, 반은 관제소 기술자들의 영역이야. 우리는 탑승객이나 마찬가지지. 관제소를 조금 도와줄 수 있는.”

 “그러면…….”

 “말했잖나. 자네 생각이 났다고.”


그는 STS-145 미션의 원래 선장이었다. 한 비행사가 연속으로 임무를 맡는 일은 이례적이었으나 그의 5000시간 무사고 비행이라는 공군 이력이 관례를 깨뜨렸다. 공군 특수부대 중에서도 최전선에 가장 많이 투입되는 제24특수전술대대 출신인 그는 걸프전이 끝난 뒤 몇 가지의 첩보 작전을 수행한 후 미국으로 돌아와 공학 학위를 취득했다. 그리고 우주비행사에 지원했다. 그 기수엔 드렉슬러도 있었다.


연구원들은 5000시간 무사고 비행의 무게를 잘 모른다. 육군은 전투기 조종사들을, 전투기 조종사들은 다시 무인기 조종사들을 혐오한다. 안전하다는 이유로.


 “이곳은 보면 볼수록 재미있어. 첨단과 구시대적 낭만이 공존하지. 군조차 그러지 않는데 말이야.”

 “유인비행 말씀이십니까.”

 “그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에 무인정찰기가 아니라 사람을 보내려고 해. 태평양 한복판을 관찰하라고 육군을 보내는 격이지.”

 “궤도에 대한 관찰은 아폴로 시절에 거의 끝나지 않았습니까.”


50이 가까운 비행사는 로라스를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무인기들은 수성에, 해왕성에, 더 먼 곳으로 가고 있어요. 센터는 우리에게 저궤도 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이미 달에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우리는 궤도권을 확실하게 우리 영역으로 채워가는 것뿐입니다.”

 “자네는.”


롤즈가 물잔을 비웠다. 마침 종업원이 커피를 내왔다.


 “못 보던 사이 과학자들처럼 말하는군.”


과학자?


 “그렇……습니까?”

 “나무라는 건 아닐세. 애초에 부른 이유가 그거였으니.”


로라스는 당황했다. 그저 떠오르는 대로 말했을 뿐이었다. 롤즈는 웃음을 터트렸다. 굳은살이 단단히 박인 손이 잔을 들어올렸다.


 “내가 왜 비행사를 그만두었는지 아는가?”

 “……모르겠습니다.”


이런, 아직 뜨겁군. 그는 잔을 내려놓았다.


 “자네는 아직 모를 수밖에 없어.”


로라스는 갸웃했다.


 “경험의 문제입니까?”

 “아니, 지상에 남을 이들에 대한 문제야.”

 “지상이라 하시면…….”

 “가족 말일세. 아내와 아이들. 내가 2천 톤짜리 폭탄을 발밑에 놓고 거기에 불을 붙이는 걸 매번 지켜봐야 할 불쌍한 사람들.”


롤즈에게는 세 명의 자녀와 아내가 있었다. 여느 군인의 아내가 그렇듯 그녀도 다정하고 인내심 많은 성품이었다. 항상 집을 비우고 무심한 데다 사관학교와 전장을 거치느라 거칠고 어린아이처럼 굴어대는 남편을 참아줄 위인은 몇 되지 않았다. 그것은 우주비행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를 반려랍시고 참아주는 여자들은 성녀의 현신이지. 주기적으로 로켓에 묶여서 우주로 쏘아올려지는 파리목숨을 사랑하고 지켜봐 준다는 건.”

 “많이 힘들어하셨습니까?”

 “많이?”


그는 로라스를 바라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올라가는 것밖에 모르는 정신병자였지. 사실 센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 그 골드핀이 뭐라고, 그 증표가 뭐라고 우주에 나가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작자들. 왜, 누군가 그런 말도 했어. 고환을 자르면 바로 뽑아주겠다고 했다면 그 자리에서 면도칼로 잘라버릴 수도 있었다고. 사실 올라가서 며칠간 뱅글뱅글 돌며 시키는 대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ISS나 허블을 수리하고 오는 것이 전부인데 말이야. 사람들은 이제 우주에 관심이 없어. 우리는 닐 암스트롱이나 버즈 올드린이 아니야. 우리는 스스로의 욕심을 위해 저 위에 오르는 거야. 그걸 위해서라면 뭐든 좋았지. 발사대에 묶여 있는 동안 자네는 무슨 생각을 했나? 나는, 그리고 그 안의 대부분의 승무원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거야. 한번만 더 지연시키면 궤도 안전관을 쏴버릴 거다, 올라가다 폭발해도 상관없으니 좀 발사해!”


로라스는 세 번째 지연 때 미션 스페셜리스트인 깁슨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것을 떠올리고 조금 웃었다.


 “그동안 내 아내는, 도합 일곱 번을 발사통제센터 엘리베이터에 오르내렸지. 불이 붙었는데 꺼져버렸어요, 아빠는 괜찮을까요? 그렇게 묻는 막내아들을 어르고, 사춘기 상상력에 울어버린 딸들을 데리고, 공포를 감추려 애쓰면서. 그녀는 지금까지 열한 번을 발사통제센터 전망대에 섰어. 걸프전도 견뎠고, 아이들에게도 내가 어디에 갔는지 알릴 수 없었던 시절도 견뎠지. 그렇지만 그건 버티는 것 뿐이었던 거야. 그 일곱 번 후에 내 아내는 무너져버렸어. 그리고 평생을 무심했던 나는 그걸 최근에야 알았지.”


롤즈는 휴일에 현관문을 열었을 때 본 광경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막내아들이 장난감 비행선을 들고 울고 있더군. 그 앞에는 우주비행사로 선발되면 받는 실버핀이 있었어. 나는 그걸 거실 장식장 위에 놓아두곤 했지. 그게 왜 저기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아내의 비명 같은 목소리가 들리더군. 다시 한번 아빠처럼 될 거라고 하면 창고에 가둬버리겠다고, 망할 로켓이 터져 죽으나 창고에서 굶어죽나 매한가지 아니냐고. 나는 아내가 그러는 모습을 살면서 처음 보았어.”


로라스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커피가 느릿느릿 식어갔다. 롤즈는 괴로운 듯 얼굴을 문질렀다.


 “나는……내가 어떻게 했을 것 같나?”


그는 눈을 감싸쥐었다. 목소리가 괴로움에 뒤틀려 있었다.


 “나는 그녀를 때렸어. 삼십 년 가까이를, 이런 말도 안 되는 남자를 보듬고 기다려준 그녀를, 내 아내를……그녀가 감히 괴로워했다는 이유로 때렸지. 뛰쳐나와 제 엄마를 감싸는 딸들에게 너희들도 똑같은 년이라고 소리를 지르다……그때서야 깨달은 거야. 내가 이 가정에 가져다준 것이 무엇인지. 내 꿈이란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희생 위에 이루어진 것인지.”


떨리는 목소리의 끝에 회한이 묻어 있었다.


 “더는 탈 수 없더군. 그래, 여전히 발사대는 나를 매료시키고, 치솟는 왕복선들에서 고체연료 부스터가 분리되는 것을 지켜볼 때면 희열마저 느껴져. 하지만 탈 수 없었어. 나는 너무 늦었지만, 가족에게 돌아가야 했어. 나를 위해 희생한, 평생을 잃은 이들에게 내가 돌려줄 차례가 되었던 거지.”


그는 얼굴을 한 번 문질렀다. 그래서 자네에게 떠넘기고 도망쳐버렸지, 마음껏 원망하게나. 로라스는 웃음소리에 희미한 미련이 묻어 있다고 느꼈다.


 “자네는 내가 만나본 우주비행사들 중 가장 특이했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더군요.”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목소리를 가라앉히려 애썼다.


 “가도, 가지 못해도 상관없는 것 같았지……비상의 의미가 없어 보였어. 그저 지시받았으니 도달할 뿐. 우주비행사를 그만두겠다고 말했을 때, 자네 생각이 나더군. 리버티호의 백업 크루로서가 아니라 그저 자네가.”

 “어째서입니까?”

 “만일 우주비행사를 계속할 생각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뒤에 놓고 온 것이 없는지, 무언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가를 치르고 있지는 않은지. 자네는 상승을 위해서라면 모든 걸 내던질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 자네의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괴롭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로라스는 조용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롤즈의 얼굴에 어린 신뢰가 서글펐다.


센터로 돌아오며 사랑하는 이를 생각했다. 욕망을 위해 누군가를 괴롭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롤즈는 로라스를 몰랐다. 드렉슬러를 취하려는 욕심에, 제 흘러넘친 감정을 강요하려는 이기심에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밤을 생각했다. 몇 번이고 되새기는 동안 강렬해지는 것은 그의 상처입은 얼굴도 괴로워하는 목소리도 아니었다. 부드러운 입술과 서늘한 체온의 감각이었다. 금방이라도 그가 제 것이 될 듯한 황홀이었다. 로라스는 저주받은 인간이었다.


그럼에도 롤즈는 한 가지 위안을 내려주었다. 적어도 드렉슬러는, 11월 12일의 STS-145 리버티호 발사를 초조히 지켜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버릇대로라면 터져버려라, 그렇게 욕설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런 걱정도 없이, 어쩌면 그날이 발사라는 것조차 모른 채 연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그에게 더 미움받아도 좋았다. 아무 걱정도 하지 말아, 자네가 사랑하는 것만을 생각해. 로라스는 그렇게 기원했다.


그를 만났다. 피곤하고 기운 없어 보이는 얼굴이 안타까웠다. 연구원들이 그를 떠밀었다. 인사를 하라며, 축하를 하라며, 위성을 부탁하라며. 로라스는 표정을 감추었다. 포로를 심문할 때나 쓰던 가장까지 끌어내야 했다. 드렉슬러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발사 예정일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날씨는 좋았다. 옷을 갈아입는 동안 목에서 짤랑거리는 금속을 내려다보았다. 그와 신에 대해 논박하던 날이었다. 로라스는 십자가를 들어 입을 맞추었다. 자네 말이 맞아. 나는 외로워. 그러니 정말로 이제는 신께 기댈 수밖에 없어.


밴으로 숙소에서 발사대까지 이동하는 동안 나눈 이야기는 보잘것없었다. 모두 긴장이 심한 탓이었다. 구조요원들이 벙커에 대기하기 위해 소방차와 구급차를 몰고 들어와 있었다. 60m에 육박하는 액체연료탱크에 매달린 왕복선의 주엔진 밑으로 강철 지지대와 급수탑이 있었고, 세 추진제 탱크의 밑으로 물이 쏟아졌다. 산소와 수증기가 뱅글뱅글 돌았다. 발사대 엘리베이터가 덜컹거리며 작동을 시작했다. 60m높이에, 발사대로부터 조종실까지 한두 사람이나 지나갈 만한 강철 다리가 있었다. 베테랑 미션 스페셜리스트 하나가 신참에게 농을 쳤다.


 “60m 높이 외줄다리라니, 후들거리지 않아?”


신참은 용감히 대답했다.


 “아폴로는 110m였는걸요!”


모두 웃었다. 폐쇄요원들이 이제 들어갈 시간이라고 말했다. 위를 향해 눕혀진 의자에 감압복을 입고 앉는 것은 늘 어려웠다. 폐쇄요원들이 재빨리 돌아다니며 자세를 교정하고 벨트를 매주었다. 맨다기보다는 묶는다는 표현이 맞겠지만. 통신코드와 비상호흡장치, 체크리스트를 달아주는 것도 폐쇄요원들의 몫이었다. 관제소에서는 끊임없이 관련사항을 점검하고 있었다.


모두를 자리에 고정시킨 폐쇄요원들이 밖으로 나가며 출입구를 닫았다. 조종실의 압력이 서서히 조정되었다.


 「……FDO완료, CAPCOM완료, LCC에 알린다. 발사 준비 완료.」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다. 5분 전. 유압펌프가 작동되었다. 우주선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비행제어시스템 테스트. 컴퓨터가 자동으로 수치를 점검하기 시작했다.


2분 전. 헬멧의 보호유리를 내렸다. 계기판을 주시하도록. 로라스는 명령했다.


31초 전. 통제권이 발사통제센터에서 리버티호로 이전되었다. 자동 시퀀스 스타트. 조종실은 조용해졌다. 거대한 선체의 떨림만이 전해져왔다.


10초 전. 중앙엔진 스타트. 밸브가 열리고 거대한 연료탱크가 뿜어내는 추진제가 터보엔진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6초 전. 중앙엔진 점화.


5초 전. 선체가 요동치고 있었다. 로라스는 기도했다. 그의 노력을, 그의 손길이 닿은 이것을, 무사히 하늘로.


4초.


3초.


2.


1.


제로.


홀드다운 볼트가 떨어져나갔다. 3천 톤의 힘이 굉음과 함께 솟구쳤다.


 “휴스턴, 리버티호는 출발하겠다.”

 「라져. 순항을 빈다. 리버티호.」


중력 가속도가 몸을 짓눌렀다. 초음속기보다도 강렬한 압력이었다. 계기판은 리버티의 속력이 200㎞/h를 넘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곧 음속이었다. 발사 40초. 감속. 로라스는 명령과 동시에 엄청난 충격에 휘말렸다. 음속을 돌파하며 맞게 되는 공기저항이었다. 속력을 줄이며 버텨나갔다. 대기가 희박한 곳에 도달하자 우주선의 진동은 줄어갔고 로라스는 가속을 명령했다. 엔진이 최대추력을 뿜어내며 맹렬히 가속하기 시작했다. 로라스는 그저 속력을 느끼고 있었다. 곧 놓아줄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우주에 놓아주었다가, 다시 붙들어 그에게 돌려주는 것이 STS-145의 주 임무였다. 리버티는 솟구치고 있었다. 그만으로 기뻤다.


발사 1분 45초.


SRB 과열, 이상징후 감지.


절대 켜져서는 안 될 적색 스위치가 빛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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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