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0)



* 현대 AU 공군 대위 우주비행사 로라스 X 천문학자 드렉슬러

* 분량이 왜 이렇게 적냐면 머리에 든 게 없어서...그래서 차마 1이라곤 못하고...










유영하던 기술자가 가볍게 분사 버튼을 누르는 것이 보였다. 칠흑의 너머에는 수천 수만의 빛깔로 물들어있는 형상이 있었다. 천구의나 사진, 영상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빛이었다. 롤즈가 속삭였다. 아름답지? 그는 리버티호의 선장이었고 이번이 세 번째 비행이었다.


 “지연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요.”


로라스는 일몰이 휘감아가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그랬다면.


계획대로라면 그들은 6개월 전에 이곳, 고도 300㎞ 상공에 있어야 했다. 한번 정한 프로젝트명은 절대 바꾸지 않는 관제소의 관행 덕에 리버티호가 궤도를 돌고 있는 지금과 원래 계획이 얼마나 어긋났는지는 서류를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날씨가 한 번, 연료탱크 고장이 한 번 발목을 잡았다. 한 번 발사대에 세울 때마다 어마어마한 소모가 뒤따르는 탓에 재정비에도 엄청난 시간이 들었다. 그 사이에,


 ― 진짜 가치는, 우리의 눈으론 보이지 않아.


보실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로라스는 확신하지 못했다. 우연히 조건이 맞아 지원하게 된 훈련에서, 천여 번의 반복훈련과 살인적인 위기 시나리오를 버텨냈던 것은 흔히 그러하듯 동경이나 열망 때문이 아니었다.


 ―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가 시작한 일이 어떻게 끝날지는 우리의 영역이 아니야. 그건 미래를 위한 일이란다, 알베르토.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그저, 아름다울 뿐.


 “대기권 재진입, 시작하지.”

 “알겠습니다.”


로라스는 계기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번이 첫 비행인 로라스로서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 시작된 것이다. 의자에 몸을 붙인 기술자 깁슨이 투덜거렸다. 리버티라니, 이것들은 사람을 몇 시간이고 묶어놓고선 이름을 저 따위로 짓는다니까. 승무원들이 가볍게 웃었다. 선체가 천천히 돌며 속력이 줄어들었다. 기체 머리를 띄워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시속 27,400㎞의 비행선이 대기를 향해 하강했다.


불쾌한 압력이 몸을 짓눌렀다. 선체는 항법장치가 정밀히 플로리다로 이끌고 있었고, 롤즈는 수시로 변하는 수치를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착륙 직전의 몇 분은 보통 선장의 몫이다. 아마 몇 년 지나면 로라스가 이어받게 될. 그러나 아직은 아니었다. 이륙에서부터 착륙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통제하는 것은 사실상 관제센터의 프로그램이었다. 로라스가 몰아온 전투기들과는 달랐다. 기술자들은 이따금 악의없이 조종사들을 “훈련 잘 된 원숭이”라 놀리곤 했다.


첫 비행 후 맞닥뜨린 대지는 끔찍했다. 몸은 무겁고 팔다리가 제 것이 아닌 마냥 헛돌았다. 검진 후에 센터로 돌아갔다. 연구소에서 신규 소프트웨어 테스트를 도우라는 명령이 하달되어 있었다. 항법 계열인가. 지정받은 연구소는 유난히 구석진 곳에 있었다.


로라스는 보스턴의 묘소에 새 꽃을 갖다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연되지 않았더라면.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그 강인하던 아버지마저 그림자 쫓겨가듯 뒤를 따르는 것을 로라스가 막을 수 없었듯.


왕복선이 한번 재정비에 들어가면 족히 두 달은 걸렸다. 군에서 부를 일도 없었으므로 그 연구실 사람들과 족히 반 년은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다. 로라스는 한숨을 뱉었다. 관제사나 기술자가 아닌 완전한 학자들은 껄끄러웠다.


복도에서부터 무언가 소란스러웠다. 낯선 남자가 연구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 진짜 우리가 어떻게 풀었는데, 치프, 하지 말라니까요!”

 “내 연구실이거든? 꼬우면 니들도 연구실 받아서 독립해 새꺄.”

 “그건 치프가 우리한테 찔러줘야죠!”

 “하이고, 논문 쓰던 거나 마저 써라 머저리야. 난 성과주의라서?”


치프라는 이야기를 보니 담당자인 모양이었다. 이곳에서 1년 넘게 훈련했지만 전혀 보지 못한 얼굴이었다. 연구자들이 흔히 그렇듯 볕 안 탄 피부에 머리칼이 붉었다. 치프라 불린 것 치고는 젊어 보였고 살집 없는 체격이 퍽 탄탄했다. 초임인가. 아니지, 센터는 넓었다. 모르는 사람 정도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었다. 다가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돌아보았다.


 “아, 오셨군요.”


연구원 하나가 알아보았는지 인사를 했다. 서류는 미리 가 있었을 터다. 대답하려는 순간 치프라 불린 남자가 툭 뱉었다.


 “뭐야?”


로라스는 순간 불쾌해졌다.


 “아, 치프, 드렉슬러 씨!”

 “뭐냐고, 저거.”

 “아까 말했잖아요, 리버티 착륙했다고.”

 “씨발, 군바리를 왜 여기다 던져주는데?”


독일인인가. 날선 턱이 홱 돌아보았다. 제법 미남상이었지만 찌푸린 데다 호감이라곤 전혀 담지 않은 표정이었다. 색 옅은 벽안이 귀찮다는 듯 로라스를 훑었다. 그가 연구원에게 까닥였다.


 “뭐랬지?”

 “잠시만요, 이름이…….”

 “이름을 알아서 뭐해? 코드 뭐냐고, 코드.”


이리 무례한 이가 있을 수 있는가, 로라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정도까지 되자 도리어 오기가 치밀었다. 이름 외에 다른 것으로 부르게 두지 않을 것이다. 성큼 나서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듯, 정중히.


 “알베르토 로라스 대위입니다.”


그는 손을 맞잡지 않았다. 약간 달라진 시선이 삐뚜름했다.


 “알베르토 로라스?”


그뿐이었다. 그는 윗도리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더니 연구실 문을 쾅 닫아버렸다. 치프! 아, 망했어, 이걸 또 어느 세월에 뚫어……대위님, 미안해요. 성격이 까탈스러운 사람이긴 한데 원래 저 정도는 아니거든요? 그런데 러시아 파견근무 다녀오고 스트레스 받았는지……아오, 우리가 저 비밀번호 어떻게 해제했는데 그걸 또 걸어…….


알베르토 로라스.


로라스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닫힌 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이에게서 들은 익숙한 울림만이 거듭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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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