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5)






불, 악취, 죽음의 비린내.


사람이 만든 것들은 불 속에서 늘 추악한 내음을 풍겼다. 드렉슬러는 배터리 케이블을 찾아 가방을 뒤졌다. 세 시간 전에 가일이 가져다준 것이었다. 센터는 화재사고에 유난히 민감했다. 더구나 유독가스가 발생하기라도 하면 의료진 전체가 비상이었다.


 “그런 것 치고는 오는 게 늦더군.”


드렉슬러는 처음으로 옆자리의 군인에게 공감했다. 거의 40년 전의 사고였다. 땅 위에서 비행사 셋을 고스란히 질식사로, 그것도 5분 만에 잃었던 아폴로 1호 이후에 센터는 우울증에라도 걸린 듯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가 가까스로 일어섰다. 드렉슬러와 로라스가 사지가 멀쩡한데도 의료센터에 갇혀 있는 것도 그 탓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들어가기 전에 네놈들이 왔으면 됐잖아. 드렉슬러는 2도 화상을 입은 오른손을 돌려보며 생각했다.


의외라면 건너편의 군인이었다. 쫓아올 줄도 몰랐고 뛰어들 줄은 더더욱 몰랐다. 옷을 벗어주고 드렉슬러와 로드리고를 껴안은 채 불길을 헤친 탓에 드렉슬러보다 화상이 심했다. 드렉슬러는 로라스를 흘끔 건너다보았다. 책을 읽고 있었다. 아침에, 무엇이 필요하냐는 앨튼의 질문에 로라스는 자동차 키를 건네주며 시집 두 권만 갖다 달라고 말했다.


시집?


드렉슬러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묻고 말았다. 불 속에 뛰어들어선 스페인어로 짜증을 내는 이상한 군인은 무려 서문학으로 학사를 받았다고 했다. 문학? 물론 군인이라고 문학을 전공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공군 파일럿에 우주비행사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랐다. 뭐하는 놈이냐? 로라스는 거즈 붙여놓은 자리를 문지르며 대답했다. 그건 내가 자네에게 묻고 싶은 말이군.


어쨌건 그는 앨튼이 가져다준 책을 읽고 있었다. 슬쩍 보이는 표지로 보아 스페인어였다. 로르카? 마차도? 알 게 뭐야. 하필 저 놈이 스페인어를 할 게 뭐람. 드렉슬러는 귀찮은 일이 하나 늘었다고 생각했다.


 “로드리고는.”


평소보다 느린 목소리가 넘어왔다. 드렉슬러는 흘겨본 것을 들킨 기분이었다.


 “실러인가?”

 “너무 멀리 갔어.”

 “그런가.”

 “그리고 그 로드리고면 찜찜하잖냐. 왜 죽는 놈 이름을 붙여.”


독일 작가의 희곡에 등장하는 스페인 영주인 로드리고는 미친 왕자를 똑같이 미치고 늙은 부왕 펠리페 2세로부터 지키려다 죽는 충직한 기사였다. 군인 놈이 좋아할만 하긴 하네. 돌아보자 로라스는 책에 손가락을 끼워 덮어놓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그가 입을 열었다.


 “어차피 이름 붙일 거면서 뭐하러 없는 척을 했나?”

 “알아서 뭐하게.”

 “자네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나는 그 강아지를 라이카라고 부르고 있었어.”

 “끝내주는 악취미네.”


로라스는 멋쩍게 웃었다. 드렉슬러는 어이가 없어 쏘아붙였다.


 “지어줄 거면 좀 멀쩡한 걸 지어줘야지, 어디 그딴 걸 붙여. 넌 개가 불쌍하지도 않냐?”

 “자네에게 들으니 기분이 묘하군.”

 “묘하긴 개뿔이. 너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정신나간 천문학자?”


말뽄새 더럽긴. 드렉슬러는 시트를 끌어당겼다.


 “정신 나간 건 너지. 라이카가 뭐냐, 라이카가? 자꾸 죽는 얘기만 하고 지랄이야.”

 “이름을 알려줬으면 되는 일이었잖나? 우주센터에 있는 개를 보고 라이카가 떠오르는 게 이상한가?”

 “뭐하러 알려주냐?”


콘센트 어딨어. 침대머리를 뒤적이며 말을 이었다.


 “네가 그렇게 이름으로 죽으라고 빌어주지 않아도 얼마 못 가서 죽어. 이름으로 부르면 정 든다.”


로라스는 말이 없었다. 어차피 드렉슬러는 콘센트를 찾고 있었다.


 “난 비글이 싫다. 왜인지 아냐? 덩치도 눈도 커다란 게 착하기까지 해. 생물학 연구동 가봐라. 피부 벗겨지고 눈멀고 발톱 빠진 비글들이 그래도 사람 왔다고 꼬리 흔들면서 놀아달라고 칭얼댈 거다. 그 꼴을 왜 보냐?”


아, 찾았다. 드렉슬러는 케이블을 끼우고 고개를 들었다. 책을 완전히 덮어버린 로라스가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꽤 어린애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


찌푸리자 로라스는 베갯머리에 몸을 기댔다. 표정은 그대로였다.


 “이름만 모르면 정이 안 드나?”

 “이름이며 애칭이며 덕지덕지 붙여주는 것보단 나아.”

 “길거리 고양이에게 과자 한 조각만 줘도 기억에 남는 게 사람 심리일세. 매일 보며 기르는 동물에게 이름이 없다고 정이 안 들 수 있겠나? 보기보다 단선적이군.”

 “어쩌라고, 오지랖 넓은 새끼야. 네가 동물실험 해보긴 했냐?”


다들 알면서 외면하는 사실을 굳이 끄집어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걸 누가 모르나? 하지만 군인은 완강했다.


 “그러면 자네는?”

 “내가 뭐?”

 “어차피 곧 죽을 개에게 이름이며 애칭까지 지어주었잖나.”


드렉슬러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난 관리자다. 그 정도도 감당 못하고 연구실을 맡을 순 없어, 미친놈아. 감당할 수 있는 안에선 어떻게 하든 내 자유 아니냐?”

 “연구원들을 걱정해서다, 이거군.”

 “비꼬는 거냐?”

 “그럴 리가.”


로라스가 표정을 굳혔다. 드렉슬러는 저 얼굴이 싫었다. 그는 결국 군인이었다. 아무리 그가 별난 말을 하고, 드렉슬러를 놀라게 하고, 불 속에 뛰어들었더라도 그가 군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만두자.”


드렉슬러는 고개를 털었다. 로라스는 물끄러미 드렉슬러를 바라보았다.


젠장.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망할. 로라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벌컥 고개를 들어 털어놓았다.


 “난 군인이 끔찍하게 싫어.”

 “알고 있네.”

 “군이랑 관계된 건 뭐든지 싫다고. 군인, 장교는 더 싫고, 훈장이니 전공이니 명예니 하는 것들도 전부 싫어.”


하, 드렉슬러는 이제 다른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로라스를 보고 실소했다.


 “그런데 네놈은 이상해. 군인같지가 않아. 군인인데, 분명 군인인데 그래보이질 않을 때가 있다고.”


로라스는 갸웃했다.


 “자네 머릿속에서 군인이 대체 뭐길래 그러나?”

 “나는,”


드렉슬러는 자신이 첫마디를 스페인어로 뱉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차라리 잘 됐다. 드렉슬러는 말을 이었다.


 “나는 스페인에서 나고 자랐어.”

 “알고 있네.”


대답도 스페인어로 돌아왔다. 연구원들이 말했나. 그 정도는 별로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버지는 그 빌어먹을 장교였지. 할아버지도, 그 할아버지도. 흔히 말하는 가업 말이야. 당연하다는 듯이 내게도 사관학교를 강요하더군. 군인이 되어야 한다는 거야. 웃기지 않냐? 요즘 세상에 군인 가문이라니? 가업이라니? 내가 하고 싶지도 않은데?”

 “그래서 미국으로 온 건가?”

 “사관학교를 가지 않으면 죽일 기세더라고. 너 예장용 제식검 있냐? 예장이란 거 다 공갈이지, 씨발.”

 “비슷한 건 알 것 같군.”


드렉슬러는 오른팔을 문질렀다. 그 잘난 물리학, 성난 음성과 함께 익숙한 통증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십오 년도 넘은 일인 것을.


 “넌 사관학교 나왔냐?”

 “아니, 학사장교일세.”

 “멀쩡히 대학 나오고 군인이라니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나 보네.”

 “이 나라에만 장교가 만 명이 넘어. 단정하지 말아주게.”


꽤 오래 버틴 셈이었다. 열두 살이 되자마자 기숙학교에 넣으려는 것을 고집으로 물렸다. 열여섯 때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었다. 그러나 열여덟에는 불가능했다. 사관학교 아니면 죽음이었다. 아버지는 사회적 죽음을 예고했지만 드렉슬러에게는 생물학적 죽음으로 들렸다. 장교가 되기 위한 신체조건 외의 어떤 재능도 그 집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한 발짝만 나서면 그의 재능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알고 있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나는 내게 강요하는 인간이 싫어.”

 “그런가.”


로라스는 무언가 가다듬는 듯한 표정을 하고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아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어. 강요라고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군.”

 “뭔데?”

 “유쾌한 이야기는 아냐. 미리 양해를 구하지.”

 “넌 원래 재미없으니까 이야기나 해.”


로라스는 조금 웃었다.


 “4년쯤 됐군. 아프가니스탄이었어. 휴가를 받아 시내로 나왔지. 딱히 할 것이야 없지만 그저 목적없이 걷는 것만으로 마음이 풀렸어. 작은 서점 앞에서 소녀 하나를 만났네. 내가 떨어뜨린 책을 주워주더군. 전쟁중에는 다들 소매치기에 여념이 없는데 말이지.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돈이라도 주려 했는데 고개를 젓는 거야. 마른 뺨에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은 아이였어. 이런 곳에 있을 아이가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더군. 이름을 물어보았어. 그곳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묻기는 오랜만이었지. 병사나 장교끼리는 계급장이나 식별표가 있었고 다른 이는 적이었으니까.”


드렉슬러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 날 저녁, 거리가 소란스러워졌어. 무슨 일인가 싶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던 중에 연락을 받았지. 모스크에 저녁 기도를 노린 테러리스트가 있다더군. 병력이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 시간을 끌어보라고. 흔한 일이야. 나는 대충 군복을 가리고 모스크로 갔지. 모스크 한가운데 폭탄을 몸에 두른 소년병이 있었어. 원격기폭장치는 없는 것 같았어. 내게는 장전된 권총이 있었고, 시야는 충분했지. 총알은 이마에 명중했고 사람들은 흩어지더군. 나는 만일을 위해 총을 쥐고 목표로 다가갔지. 자네는 이제 내가 무엇을 보았을지 알 거야.”


로라스는 웃음을 터트렸다. 드렉슬러는 그런 감정없는 웃음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낯선 싸늘함이 몸을 휘감았다.


 “그 여자아이더군. 즉사해서, 천천히 피와 뇌수를 흘리며. 그리고 나는 그 아이의 이름을 알고 있었어.”


드렉슬러는 손을 그러쥐었다. 로라스가 물었다.


 “그런데 말일세, 내가 그 날 아이의 이름을 묻지 않았다면 그 아이를 잊어버릴 수 있었을까? 내가 총으로, 전투기로 그 사막에서 살해한 목숨은 이름을 모르기에 내게 무의미해질 수 있나?”


로라스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죽음은 직면하기 전에는 이겨낼 수 없어. 피하면 언젠가는 괴물처럼 거대해져 덮쳐와. 나는 그것만은 확언할 수 있네.”


드렉슬러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는 군인이었다. 틀림없는 군인이었다.


다만, 드렉슬러가 이제까지 전혀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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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