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신






로라스, 나쁜 소식이야. 엄청난 발견을 해버렸거든. 너는 아마 연구가 끝났냐고 물을 테고 왜 나쁜 소식이냐고 묻겠지? 너는 뻔하니까. 아, 참고로 이건 루마니아에서 쓰는 거야. 그리스에 들어가면 편지 쓸 틈 따윈 없을 테니. 그러니 내가 여기서 연구를 마쳤을 리가 없잖냐? 나쁜 건 두 가지, 아니, 세 가지야. 글로 하면 좀 나을 줄 알았더니, 다를 것도 없네. 역시 펜은 메모할 때나 들어야 하지만, 어쩌겠어. 이번만은 네 반응이 짐작이 안 가는걸. 이런 적 처음인데, 아니, 네놈이 아이거 산에서 저지른 짓 빼고. 그건 끝내줬어. 그래, 그 짓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지도. 앞이 흐릿한 건 딱 질색이지만 네놈은 그걸 엉망으로 만들어. 늘 그랬지. 어쩌면 그게 연구주제였을지도 몰라. 내가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 연구실을 차려선 결론을 내려고 노력하는 피곤한 버릇의 소산인 거지. 그리고 결과가 나온 거야. 정말 싫지만, 이게 사실이니 어쩌겠냐, 그래. 사랑한다, 알베르토 로라스.


끔찍하겠지! 이걸 읽을 네놈 얼굴이 상상이 가질 않네. 창 들고 호모새끼는 교리에 어긋난다며 뛰어오려나? 하지만 그건 안 되겠지. 네놈이 이걸 읽고 있으면 난 뒈졌다는 뜻이니까. 이게 두 번째지. 아마 내 머리가 평소보다도 더 핑핑 돌아서 결론을 탁 내놓게 한 연료일 테고.


작전은 내일이야. 이름도 목적도 말하진 않겠어. 죽거나, 살겠지. 죽을 확률이 까마득하게 높아. 작전제의를 듣고 뭔가가 걸려서 떨어지지 않는 기분이었어. 연구실로 돌아갔다가, 옥상에 나갔다가, 밤이 돼선 문득 깨달았지. 그러곤 수락했어. 전말은 그게 다야.


정말로 가늠이 가질 않아. 네 얼굴 말이야. 무슨 표정일지, 무슨 말을 할지, 내가 하필 너 같은 도련님한테 홀랑 빠졌다는 거나, 내가 이런 정신나간 작전에 힘을 빌려준다거나 하는 일을 어떻게 생각할지. 그러니 이 작전은 내 생각엔, 네 연장선이야. 내게 있어서 알베르토 로라스라는 존재의 연장선이라고. 용을 잡아올 테니 저랑 결혼해주시죠, 공주님? 어차피 난 망꾼인데 시작하기도 전에 망한 셈이지.


그러니 상상이라도 해야 하는데... 상상이란 걸 해 본 적이 있어야지. 여기선 짐작이 가. 내가 늘 빠져 있던 공상은 뭐였느냐고 하겠지. 그건 공상이 아냐. 그냥 아는 거지. 그건 늦든 빠르든 실현될 일들이야. 나는 안타깝게도 인간이라서, 내 범주를 넘는 건 그릴 수가 없단 말이다. 내가 내 설계를 공방 안에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내가 공상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직 시기가 아닌 것뿐이야. 지금 내가 쥔 금속이 수천 년 전에는 땅에 파묻힌 돌멩이에 불과했다가 칼이 되고, 집을 짓고, 물에 떠 항해를 하고, 마침내는 하늘을 날게 되었듯이, 내 그림은 언젠가는 모두 현실이 될 거야. 네 몽상과는 다르지.


너는 몽상을 해. 그건 내게 익숙지 않고 얼마간은 내가 싫어하는 거니까(되지도 않을 일에 시간낭비할 필요는 없잖냐?) 나는 무시하려고 했는데 되질 않았어. 사람좋게 말 거는 반반한 낯짝을 밀어내지도 못했지. 너는 물론 모르겠지만 나는 가끔씩 밤을 새고 새벽 연무장의 너를 보러 간 적이 있어. 넌 나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거기 있었는데 눈이 따라가기도 버거울 정도로 높이 뛰어내렸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했지. 그대로 저 하늘에 머무르면 황홀하리란 생각을 했어. 너도 그랬을 것 같고. 날아오르는 높이는 점점 높아졌고 네가 땅에 닿는 시간은 점점 늦어졌으니까. 나는 그 때 처음으로 공상이란 걸 하게 됐지. 어느 날 네가 그대로 솟구쳐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나는 기분이 나빠졌고 다시는 연무장에 가지 않았어.


그래, 사실은 상상 해본 적 있어. 하지만 네 얼굴 같은 건 아냐. 너이긴 하지.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다고. 공상이 다 그렇잖아. 나쁘진 않았지만 결국은 헛수고인 것들.


너는 늘 날아올랐지. 하지만 너도, 나도, 그건 뛰어오르는 데 불과하단 걸 알아. 사람은 날 수 없어. 그건 오래되고 절대적인 진리였지. 지금도 사람만의 힘으로는 날 수 없잖아. 철을 띄우고 기계에 사람을 실어도, 그건 불과 공기의 마법이지 사람의 힘이 아냐. 순수한 사람의 힘으로 하늘에 머무를 수는 없어.


비행 능력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 네가 뛰어오르는 것을 보았어. 실없는 생각이 들지 뭐냐. 진화 과정에 어떤 사고가 있어서 새가 끼어드는 거야. 아주 크고 강한 새, 앨버트로스나 매 같은, 그런 피가 일식이 지나고 능력인 척 하고 깨어나는 거지. 그러니 그 피는 당연히 날아서, 멀리 날아서, 이미 없는 선조를 찾는 거야.


그 공상은 재미있었지만 동시에 우울했지. 내게는 암만 봐도 그런 피가 섞여있는 것 같지 않았거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서 이상하냐? 당연한 거야. 나는 특별하고 싶었지. 사실 너도 그렇잖냐? 드라군이 다 그렇지. 특별하다고 떠받들리며 자랐고, 그 안에서도 더 돋보이고 싶었지. 그저 방향이 달랐을 뿐이야. 그런데 너는 특별하고, 나는 특별하지 않다는 건 공상 속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더라고. 그래서 나는 그 생각을 버려버렸지.


하지만 네 공상은 즐거워 보였어. 그건 대부분 터무니없었지만 가끔씩 네 손에 의해 현실이 되었고, 너는 네 공상의 크기가 터무니없기에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위로 나아가기만 했지. 어쩌면 네 공상만은 시간낭비가 아닐지도 몰라. 네 스스로 네가 일군 일을 작게 생각한다면, 네 머릿속엔 내가 짐작하는 것보다 큰 공상이 있을 테고, 나는 그 광대함이 궁금해졌지. 대체 얼마나 찬란하기에, 얼마나 아름답기에 여기선 도저히 만족할 수가 없는지. 그리고 다시금 기분이 나빠졌어. 네게 이 세계는 얼마나 너저분할까. 그래서 너는 몽상 속에 사는 걸까. 공상은 공상일 때 가장 찬란하니까. 피폐한 지상 따위는 잊고, 새 사명을 네 공상 속에서 찾아, 그렇게 한 걸음 더 멀리.


그러니 이건 세 번째야. 나는 네 몽상 안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 그 안에 내가 없다는 걸 확인할 용기가 나지 않았지. 말했잖아? 나는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고. 그래서 내가 망할 기사놀음을 하러 가는 거다.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정의구현에 한몫 하고서 온갖 생색을 내려고. 빌어먹을, 그런데 생각이 나질 않네. 망할, 내가 왜 하필                                                   




*(덧긋고 찢긴 자국)

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