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2)







의외라면, 다섯 명의 연구원이 모두 로라스를 좋아한다는 사실이었다. 한술 더 떠 그들은 소위 “날아가는 치프” 사건을 매우 즐거워하기까지 했다. 영웅적인 일이에요, 기념비적 사건이라고 할까? 앨튼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여기 왔던 사람들은, 남아 있든 못 견디고 나갔든 꼭 하는 말이 있거든요.”


상임연구원인 소렐이 말을 받았다.


 “아, 한 대만 치고 싶다.”


시스템 담당인 가일도 거들었다.


 “저 주둥이 쳐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뒤통수라도 갈기고 싶은데 졸지도 않지.”


로라스는 커피를 들이키며 씁쓸하게 웃었다. 인간관계에 큰 공을 들이지 않는 그로서는 이런 호의가 낯설었다. 더구나 그 계기가 폭력이라면 더욱 유쾌할 것은 못 되었다. 기상학자인 코브가 말을 이었다. 그녀는 기상데이터를 실험에 적용하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워낙 변수가 많아 늘 바빴다.


 “어쨌든 다들 마음만 굴뚝같고 시도는 못 해봤죠. 보기보다 힘이 좋거든요. 어느 시간을 쪼개는지 운동도 착실히 하고.”


힘? 로라스는 갸웃했다. 한주먹에 나가떨어지던 천문학자는 로라스의 눈에는 전형적인 샌님 그 이상은 못 되었다.


 “그러니 놀랐단 거죠. 뭐 체중이 엄청 적긴 한데……한눈에 보기에도 말랐죠? 하지만 힘 좋은 건 사실이에요. 다들 말로만 패고 싶다 치고 싶다 했지 실행에 옮긴 건 로라스 씨가 처음이라고요. 군인은 다르구나 했죠. 대단하단 얘기예요.”


짝짝, 앨튼과 가일이 박수를 쳐 주었다. 살다 보니 사람을 패고 박수를 받는 일도 있군. 동시에 로라스는 당연한 듯 사료 봉지를 떠넘기던 드렉슬러의 뒷모습이 떠올라 괘씸해졌다. 코브가 제 잔을 홀짝이며 말했다.


 “우리야 뭐 말은 이렇게 해도 치프가 싫진 않아요. 싫었다면 다른 팀으로 옮겼겠죠. 까탈스럽긴 해도 못된 사람은 아니고, 무엇보다 천재니까요. 향상심이 생기죠. 자극을 받아요. 보통은 받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지만.”

 “맞아, 가끔 플랜 짜는 거나 계산하는 거 보면 사람 같지가 않다니까요? 컴퓨터보다 빠를 거야.”

 “빠를걸? 컴퓨터는 수식 입력해줘야 하잖아.”


잠시 연구원들은 자신들의 상관이 얼마나 천재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로라스는 가만히 앉아 듣고만 있었다. 자신이 끼어든다고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가 정말로 천재라면, 로라스는 그의 지능을 절대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더구나 이 우주센터의 연구원들마저 한마음으로 인정하는 천재라면야 그가 무엇을 가졌는지 알아볼 수라도 있는 이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문득, 로라스는 그가 꽤나 외로우리라는 생각을 했다. 주제넘은 생각이었다.


 “그때도요, 학위……아차.”


앨튼이 힐끔 로라스와, 연구팀 맏이인 스톨리핀을 돌아보았다. 마흔다섯의 스톨리핀은 연구자로서 고령은 아니었지만 치프라는 인간이 워낙 젊은 탓에 팀원들을 어린아이처럼 돌보는 처지였다. 스톨리핀이 고개를 까닥하자 앨튼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수학 학위 딸 때……지도교수 이론 엎어버렸잖아요. 정면으로. 조금만 수정하면 교수직 보장됐을 텐데 그걸 자기는 틀린 거 없으니 한 글자도 못 고친다고 밀어붙여가지고 학과 뒤집어놓고, 별볼일없는 연구소 전전하다 국적 취득해서 여기 온 거예요.”


로라스는 물었다. 국적?


 “아, 모르셨구나. 치프 스페인 사람이에요. 십대까지 거기서 자랐는데 집이 싫었댔나? 몰래 이쪽에 원서 넣고 전액장학생으로 합격하자마자 냅다 튀었대요. 치프 표현이 그래요. 튀었다고. 학교야 상관없었지만 여긴 미국인이어야 하잖아요?”

 “비행사가 아니면 상관없잖나?”

 “아, 으음. 괜찮겠죠?”


앨튼은 다시 스톨리핀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번에도 끄덕이고 말 뿐이었다.


 “이건 진짜 우리가 로라스 씨 믿고 좋아하는 거니까 얘기하는 건데요…….”


좋은 이야기는 아닌가 보군. 로라스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치프는 비행사 선발되려고 여기 지원했었어요.”


저도 모르게 인상을 구겼는지 앨튼이 머뭇거리며 말을 이었다.


 “조건은 좋았어요. 젊었고, 학력은 넘치고, 의욕도 있고 체력도 적당했죠. 그런데 떨어졌어요. 대신 롤즈 소령님이 뽑혔죠. 석사학위 뿐이고 나이도 많은데요. 여긴 정년 같은 거 없다고들 하지만.”

 “설마 그래서 군인을 싫어한다는 건가?”

 “전 그 때 여기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다른 이유가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군 출신만 보면 유난히 날카로워지시는데 말도 안 해주고.”


스톨리핀이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기는 치프 입에서 들은 게 아니고 저희도 우연히 기록을 본 거라……떨어진 이유도 모를뿐더러 롤즈 소령님과 치프의 태도가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건 치프는 지금도 비행사가 되고 싶어한다는 겁니다. 그 이후로 지원한 적은 없지만요.”


로라스는 다 마신 커피를 밀어놓았다. 땅벌레와 부품 중 무엇이 더 무례했을까? 어쩌면 그가 뻔뻔하다는 것이 다행일지도 몰랐다.


연구원들과 헤어져 훈련센터로 가던 중에 드렉슬러와 마주쳤다. 그는 정신없이 스마트폰을 두드리다 멈춰선 발을 보고 벌컥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 짜증이 나 있던 표정이 미세하게 풀렸다. 로라스는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차 좀 태워줘.”

 “훈련센터…….”

 “안 가도 되잖아.”


말을 하면서도 손가락이 액정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로라스는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말했다.


 “빌려줄 테니 제자리에만 갖다놓게.”


순간 그가 머뭇거렸다. 로라스로서는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드렉슬러는 시선을 피하며 액정을 꺼버렸다.


 “나 운전 못해.”


자네가 못하는 것도 있나? 그렇게 되받아치려다, 보아온 것과 다르게 어두운 표정이라 다물고 말았다. 드렉슬러가 툭툭 바닥을 치다 말했다.


 “됐다, 나중에 하지 뭐.”

 “기다리게.”


로라스는 스스로가 머저리 같았다.


 “어디 가려는 건가?”

 “그때 거기.”


잠시 갸웃하던 로라스는 물었다. 거기?


 “펫샵.”

 “아픈가?”

 “아니, 장난감.”


로라스는 자신이 머저리가 맞다고 결론지었다. 연기에 발랑 속아넘어간 기분이었다. 하지만 제 스스로 태워주겠다 말해놓고서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주차장으로 몸을 돌리고 말았다. 드렉슬러가 액정을 두드리며 따라왔다.


드렉슬러는 조수석을 열자마자 짜증을 냈다.


 “또 쌓였어. 넌 애인도 없냐?”

 “자네는 있나?”

 “난 그런 거 안 키워.”

 “그럴싸하군.”


손이 책더미를 감싸 뒤로 휙 던져버렸다. 드렉슬러는 빈 자리에 만족스레 앉았다가, 문득 불안해졌는지 로라스를 돌아보았다.


 “벨트 안 매도 되지?”

 “글쎄, 어떨까.”

 “멀쩡하게 생겨놓고 순 또라이 아냐 이거.”

 “오늘은 250㎞로 해볼까?”


새파래진 학자님이 벨트를 매는 것을 웃으며 지켜보았다. 드렉슬러는 투덜거렸다.


 “너랑 다니면 보험금 늘어날 거다. 답답해, 아오.”

 “14년 동안 운전했지만 사고는 내본 적 없군.”

 “거짓말하지 마.”

 “진짜지만, 믿기 싫다는데 강요하진 않겠네.”


로라스는 시동을 걸고 경로를 잡았다. 집에서 연구소까지의 얼마 되지 않는 거리는 그냥 다니는 탓에 아직 펫샵 주소가 기록에 남아 있었다. 설정하려는 로라스의 손을 드렉슬러가 쳐냈다.


 “아냐, 거기 아냐.”


드렉슬러가 새로 입력한 주소는 엉뚱한 데다 외진 곳이었다.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고지대였다. 로라스는 의아해졌다.


 “펫샵이라고 했잖나?”

 “여기부터 가고.”


아주 운전수 취급이군. 로라스는 엑셀을 밟았다. 드렉슬러는 도로 액정에 시선을 집중했다.


 “멀군.”


30분쯤 지났을 때 로라스는 감흥없이 말했다. 드렉슬러는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두 시간쯤 걸려. 오렌지밭 나오기 시작하면 속도 더 올려도 돼.”

 “어디 가는 건가?”

 “내 집.”


하나부터 열까지 정상인 데가 없다. 비행사나 연구원들은 직무상 센터 근처에 사는 것이 보통이다. 치프란 인간이 집을 저런 곳에다 뒀다고? 운전도 하지 못하면서?


 “혹시나 해서 묻는 거네만.”

 “뭔데.”

 “얼마만에 들어가는 건가?”

 “음…….”


드렉슬러는 가늠하듯 눈을 깜박였다.


 “114일.”


그쯤 되면 집이 아닌 것 같은데. 로라스는 스마트폰에 빠진 드렉슬러를 흘끔 바라보았다. 집도 연구실마냥 보안을 걸어놓았을지 궁금해졌지만 묻지 않기로 했다.


 “뭘 하는 건가?”

 “뭐?”

 “자네 스마트폰.”

 “넌 말해도 모르잖아.”

 “전자공학 학위는 있어.”

 “하이고, 대단하네, 대단하십니다아.”


드렉슬러는 비웃다 몇 번 화면을 두드렸다. 로라스는 다음부터는 벨트를 매지 않게 놔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드렉슬러가 뒤로 늘어지며 입을 열었다.


 “연구실 연동시킨 거야. CCTV, 데이터베이스 변동, 연산결과 알림……음, 요즘은 개도.”

 “개?”

 “그때 산 거. 체온이랑 심박 정도는 볼 수 있어.”


커브를 돌았다. 시야의 끝까지 밭이 뻗어 있었다.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말대로 엑셀을 조금 더 밞았다. 칩을 삽입했을까? 로라스는 눈이 커다란 개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실험을 하려는지도 모른다. 실험으로 죽게 될까, 안락사를 당하게 될까? 손바닥만한 액정 위에 출력되는 숫자는 어느 정도의 의미가 있을까?


로라스는 늘 알지 못했다.


 “아, 다 왔다.”


드렉슬러는 이번에도 차가 멈추자마자 뛰어내렸다. 로라스는 설마하던 것이 눈앞에 벌어진 황당함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다.


집이 아니었다.


드렉슬러가 망설임없이 들어가버린 건물은 틀림없는 천문대였다. 둥그런 돔이 반쯤 열린 채 로라스의 반대쪽을 향하고 있었다. 하얀 벽체가 높았고 창문이 적어 사람이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오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문간에 우편물이 쌓여 있었다. 혼자……라기엔 역시 천문대였다. 흘긋 구경이 엄청난 망원경이 보였다.


터무니없군. 로라스는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차 주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따라오라는 이야기가 없었으므로. 들어간 지 한참이 지났다. 로라스는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번호는 아마 이것일 테고. 한 마디짜리 문자메세지를 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났다.


 “야! 야아! 로라스!”


기분이 미묘해졌다. 듣지 못했다고 생각했는지 악을 쓰는 외침이 들려왔다.


 “알베르토 로라스!”


정말로 이상했다. 로라스는 고개를 들어 이상한 인간을 올려다보았다. 붉은 머리칼이 훌쩍 삐져나왔다가 도로 들어갔다.


 “도와줘! 무거워!”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 다짜고짜 도와달라니, 로라스는 현관에서부터 문제에 부딪혔다. 비밀번호가 걸려 있었던 것이다. 놀리는 건가? 아니,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았다. 잠긴 채 코드 입력을 요구하는 문 앞에서 잠시 고민하던 로라스는 한 단어를 눌러보았다. S―P―E―A―R. 화면이 푸르게 바뀌며 잠금장치가 해제되었다. 의외로 단순하군. 로라스는 계단을 올랐다.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드렉슬러는 4층에 있었다. 뭔가를 쑤셔담은 상자 네 개와 노트북 한 대, 외장 하드디스크 한 개를 들고 있었다. 도와줘, 드렉슬러는 로라스를 보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요구했다.


 “뭘 이렇게 들고 가나?”

 “자료랑, 자료랑, 자료지 뭐.”

 “파일로 변환하지 않고?”

 “네가 타이핑할래?”

 “사양하지.”


스캐닝하면 되지 않나? 상자를 옮기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단을 내려가 묻자 종이가 편해, 라고 대답했다. 결국 다 핑계였군.


무게는 별것 아니었지만 부피가 컸다. 1층에 내려와 열린 문을 보고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듯 드렉슬러가 물었다. 암호는? 연구실하고 똑같더군. 그걸 왜 기억하고 다녀! 그러면 어떻게 올라왔겠나? 재수없어. 자네도 그래. 로라스는 상자를 뒷좌석에 쌓아놓았다. 드렉슬러는 냉큼 조수석에 올라타 무언가를 만지작거렸다. 노트북에 뭐라도 연결하나 보군. 물건을 실은 로라스는 시계를 보았다. 오후 3시가 넘어 있었다. 시동을 걸며 물었다.


 “펫샵, 갈 건가?”

 “당연하지.”

 “시간이 늦어 한번 물어봤네.”


차를 돌려 다시 도로로 나왔다. 속력을 올리다, 로라스는 제 차가 이렇게 꽉 차 있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뒷자석엔 상자 더미가 사람 앉은키만큼, 그 틈새로 로라스의 물건이 부주의하게 끼어 있고, 옆자리엔 성격 나쁜 천문학자가 앉아 노트북의 데이터를 백업하고 있었다.


궁금해졌다.


 “자네는.”

 “엉.”

 “매번 비행사들을 이렇게 대하나?”


드렉슬러가 돌아보았다. 그가 눈을 깜박이며 미간을 찌푸렸다. 고민? 으음, 약간 앓는 듯한 소리까지 내고서야 그가 대답했다.


 “아니, 넌 좀 이상해.”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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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