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 사늑님

사퍼/로라드렉/단편 2015. 4. 4. 15:38



* 트위터의 #멘션한_트친의_글을_내_글로_써본다

* 뭔가 별로 바뀐게 없는듯한...

* 원문 : http://privatter.net/p/699955









끝없이 뻗어가는 장방형은 이미 수직의 선이다. 다른 도리는 없다는 듯 한 가지 방향만을 강요한다. 저항할 생각은 없다. 다만 광막한 가운데, 곁에 그가 있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늘 그렇듯 한 걸음 뒤가 아니라 이 곁에, 그가 없어 넓게만 느껴지는 길의 한편에 같이 있어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시 늘 그렇듯이, 검룡이 창룡의 은밀한 휴식을 함께할 수 없듯이 그는 허상 속에서조차 고독했다.


무슨 수가 있으랴. 불안히 뛰며 그를 그리는 마음을 붙들고 걷는다. 돌아보아 다가가도 다시금 멀어지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러나 미처 붙들지 못한 미련들이,


똑,


사념이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가.


길은 곧고 하얗다. 장식도 갈림길도 없이 그저 뻗어 있을 뿐이다.


똑,


주위를 둘러보아도 물줄기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거슬린다. 침범당했다는 기분이 든다.


똑,


순간 어깨에 데인 듯한 통증이 일었다.


감싸쥐자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흘러내린다. 손은 늘상 마주하던 핏빛이 아니라 연분홍빛이었다. 어깨의 상처에서부터 연분홍빛 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손을 타고 미끄러지며 똑, 선명히 부서지는 소리가 귓가를 파고든다. 검룡이 내디디는 자리에 얼룩처럼 분홍빛이 남는다. 몸을 낮추어 그 위를 쓰다듬자 물감이 번져가듯 길은 꽃빛으로 물들어간다. 웃고 만다. 제 길마저 물들여버리는 간절함이, 그럼에도 한 방울 한 방울 겨우 새어나오는 마음의 약함이.


연심이 흘러넘친 상처는 더 이상 고통이 없다. 움켜쥔 손에 연분홍을 울컥 물들이고, 제멋대로 흘러내리며 옷가지를 적신다. 그렇다, 연심은 제멋대로다. 그 마음이 향하는 이를 닮아 그런 것일까. 분명히 심중에 고이 묻어 두었건만 어느 새인가 싹을 틔워, 검룡이라는 그릇을 꽉 채우고 흘러넘치고 만다. 이 마음을 담기에 검룡은 너무 작았다.


검룡으로서는 결코 얻을 수 없을 먼 하늘의 봄빛을 닮은 사랑스러움이 새어난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린다. 따스함을 그리는 행복마저 앗아가지 말아주소서. 창백하고 황폐한 겨울로서 감히 바라지는 않겠으니, 그리는 것만은 허락해주소서. 봄이 오지 않아도 괜찮으니, 그 아름다움이 제게 닿지 않아도 괜찮으니.


새하얀 길은 겨울이 봄을 그려보는 설원이다. 모두가 눈에 덮인 채 하얗게 빛나며 돌아보지 말 것을, 전부 버리고 나아가기를 차갑게 불어내는 심상이다. 그 순백에 연심이 묻는다. 물들고 마는 빛남이 서리 녹아 무너지듯 사라져간다.


은은한 꽃향기를 몰고 나타나는 것은 푸른 잎이 가득한 숲이다.


가지를 헤친다. 향기가 다가오라 이끈다. 멀지 않다. 가까워져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가지를 밀고 풀뿌리를 밟으며 나아간다. 상처가 나도 멈출 수 없다. 마침내 관목이 동그랗게, 소중한 듯 둘러싼 화초와 마주했다.


안기듯 솟은 푸른 잎사귀 위에 새하얀 꽃망울이 탐스럽다. 어느 빛깔에도 물들지 않고 빛나는 그것은 아담한데도 당당하고 고고하다.


아까워 죽을 것 같으니 이걸 좀 담아다오.


웃음 사이로 부탁하듯 속삭이며, 흠뻑 물든 손을 올렸다. 흥건한 연심이 신념에 닿는다. 감싸쥐자 새하얗던 꽃은 순식간에 연분홍으로 물든다. 갈구해왔다는 듯이, 이를 위해 모든 것을 거부해왔다는 듯이. 싱그러운 꽃은 아름다우나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자신만의 것이다. 유일한, 소중히 비밀스러운.


꽃송이의 무리는 가운데가 비어 있었다. 장미가 피었으면 좋겠다. 새빨갛고 타오를 것 같은 빛깔의, 연심에 잘 어울리는. 향기에 몽롱해져 아잘레아 무리 위로 쓰러졌다. 피로가 몰려 눈을 감자 꽃향기가 달래듯 몸을 감쌌다. 더 이상의 꿈 없이, 좋은 잠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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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