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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퍼/로라드렉/단편 2015. 4. 3. 21:18



* 트위터의 #멘션한_트친의_글을_내_글로_써본다

* 힘들었다...죄송합니다...

* 원문 : http://www.twitlonger.com/show/n_1sau9lt









“야, 너 오늘이 딱 백 일 째인건 아냐?”

“그런가? 어쩐지 하늘이 맑더군.”


로라스는 늘 그렇듯 짤막히 답하곤 드렉슬러를 끌어안았다. 아무리 먼저 덤빈 게 저쪽이라고 해도 파티장에서 해줄 행동은 아니었기에 드렉슬러는 그를 꼬드겨 밖으로 나온 제 선택을 칭찬해주었다. 백 일, 어제까지는 별 생각 없이 흘려보냈던 시간들이 문득 특별해지는,


“내일도?”

“내일도.”


말쑥하게 빼어입은 정장 어깨에 턱을 얹은 채 바라보는 겨울 하늘은 까맣게 반짝인다. 겨울은 별 보기 좋은 계절이다. 문학적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그렇다.


“그럼 별이나 보러 가야겠다.”


내일도 이렇게, 답잖게 콩콩 뛰는 고동에 살짝 고개를 얹고.


“음.”


아차,


“아, 어, 미안. 자선 파티 가야되지?”


크리스마스였다. 우리의 백 일 전에, 이 거리가 미처 익숙해지기 전에 드렉슬러는 이 날을 기다렸던 적이 있었다. 특별한 날. 모두가 모여 왁자지껄해 오히려 고독할 수 있는 날. 그 날에 드렉슬러는 별을 볼 생각이었다. 그 때가 되면 먼 별만큼 먼 곳에 있을 녀석에게 묻은 감정도 겨울바람에 털어버리고, 혼자 서 있기를 바랐었다. 어색해져 손을 털며 웃었다. 그 땐 혼자 별을 보려고 했었는데, 이 백일간에 그는 혼자 별을 보는 것이 두려워졌다.


내일은, 그럼…….


“아니, 아닐세. 그건 큰 문제가 안 되네. 대리인을 보내도 되고.”

“괜찮겠냐?”


굳이 묻는 것은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하필이면 백 일이고, 하필이면 성탄절이어서, 고작 하룻밤이 무어라고 간절해진다.


“물론.”


시원하게 웃어주는 얼굴이 좋았다.


“다만 미리 사과하지.”

“뭘?”


바싹 다가온다. 끌어안으려는 것이라 생각해 순순히 팔을 들었는데, 로라스는 고개를 기울였다.


“자네는 오늘 못 자.”


묻기도 전에 손가락이 턱을 끌어올리더니 입술이 맞닿았다.




***




충동이라고 해두겠다. 하기야 무엇이 충동이 아닐까. 아무리 혼자서 다듬고 다듬어보아야 그 앞에 서면 무의미해진다. 한심하게 뒤쫓다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만다. 바보같이 지껄이며 끼어들고, 동그래진 하늘빛 눈을 보고서야 깨닫는다.


파티장을 빠져나오며 손을 쥐었다. 찬 손은 가느다랗지만 딱딱하다. 따뜻해지기를 바라며 코트 주머니에 끌어들였다.


드렉슬러는 열쇠를 찾는 데 오래 걸렸다. 머뭇거리며 빠져나간 손의 감촉이 아쉬워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본다. 간신히 열쇠를 끼워넣은 드렉슬러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들어가버린다. 쫓지 않고 천천히 문을 닫았다. 드렉슬러는 외투도 벗지 않고 벽난로를 뒤적이고 있었다. 다시, 저도 모르게 웃어버리고 만다.


붉은 머리칼 위에 눈송이 하나가, 막 녹아내려 물방울이 된다. 그것을 아까이 손에 담았다. 마른 손에 물방울은 곧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씻겠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외투를 벗겨 걸어주고 욕실 문을 열었을 때, 마른 욕조를 보고, 이번에는 서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실없이 웃어대는 서로의 얼굴에서 우리는 같은 날의 다른 기억을 같은 감정으로서 공유함을 알았다.


드렉슬러가 더운물을 준비하는 동안 로라스는 벽난로를 달구었다. 열기가 아지랑이를 일으키며 다가온다. 넘실거리는 불길처럼 뜨거운 날이었다. 전쟁마저 멈추게 할 만큼, 고국보다도 더 더웠던 여름날이었음에도 로라스는 무구를 갖춰입고 드렉슬러를 찾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를 만나러 갈 때면 괜스레 하나씩 더 걸치게 되는 것이었다. 자꾸 웃음이 나와, 로라스는 불씨를 뒤적인다.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 보는 사람 쪄죽겠다, 하고 던지던 목소리, 욕실로 떠밀던 손, 제 갑옷을 들고 신이 나 달려가던 얼굴, 그 비아냥 섞이지 않은 순전한 웃음이, 저 얼굴을 위해서라면.




***




가득찬 욕조에 그냥 주저앉아 버린다. 철퍽, 물이 넘어 바닥이 질펀해지지만 웅크린다. 바깥에 있는 놈을 부를 생각은 없다.


설마하니 기억할 줄은 몰랐다. 그런 것으로 따지자면 고백해올 줄도, 아니, 사랑이라거나 그, 낯부끄러운 것들을 품고 있을 줄도 몰랐기는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알았더라면 드렉슬러는 그 열기를 잊어버리려 애쓰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갑옷을 받아 세워놓았다가, 호기심이 동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더위마저 깜박 잊을 만큼 신나는 일이어서 어느 새인가 판금의 틈새를 들추어보며 무게가 얼마, 내구성이 어느 만큼, 그렇게 적어나가고 있었다.


“다리오, 옷 좀 빌려주겠나?”


심지어 로라스가 씻고 나올 때쯤엔 그가 연구실에 들렀다는 사실마저 잊고 있었다. 멍청했다. 아무리 무례가 일상인 드렉슬러이고, 어지간한 일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로라스라지만 그들은 기사였고 기사에게 무구는 목숨이었다. 드렉슬러는 그의 허락 없이 목숨을 들추어본 셈이었다. 하지만 그는 잠시 놀란 표정을 했다가, 이내 다시 옷을 부탁했을 뿐이었다.


턱까지 잠기도록 가라앉았다. 따뜻한 물이 몸을 고루고루 감쌌다. 돌아오는 길에 잡혔던 손이, 딱 이 정도 온도였던 것 같았다.


사랑한다, 고 말했다. 그 알베르토 로라스가, 다리오 드렉슬러에게. 그것은 농담이라기엔 너무 무거웠고 믿어 주기엔 너무 소박했지만, 흔들림없이 맞춰오는 눈만으로 드렉슬러는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드렉슬러는 대답하지 못했지만, 로라스는 대답을 듣지 못했지만, 그렇게 백 일이 속절없이 흘렀다. 박애라 믿었던 것이 애정이라는 것을 알아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상하기도 하지.


언제부터였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래 전부터라고 대답했다.


오래 전부터,


드렉슬러는 별을 보러 가고 싶었다.


내일 밤의 천문경 옆에는 두 사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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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