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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퍼/로라드렉/단편 2015. 3. 30. 18:09



* 트위터의 #멘션한_트친의_글을_내_글로_써본다

* 원작파개! 히히 몰라

* 원문 : http://blog.daum.net/bincan_note/66







3개월.


계절이 가며 해가 짧아지다 다시 길어지는 변화 속에도, 아침에 해가 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침 일곱 시, 알베르토 로라스가 손을 뻗어 요를 움켜쥐고 천천히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몸짓은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같은 항상에 해당했다. 드렉슬러는 성실한 연인보다는 성실한 관찰자였다. 잠이 들어서도 자신을 찾는 한심한 남자를 야박하게 밀어내고, 테라스의 의자에 앉아 싸늘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검은 하늘이 점차 짙푸른 보랏빛으로, 붉은 자줏빛으로, 다홍빛으로, 이내 샛별마저 보이지 않을 아침으로 변해가는 광경을 지켜보다 고개를 돌리면 그가 깨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오늘의 일출은 어제보다 오 분 빨랐다.


로라스가 화분 위에 말라붙은 잎사귀에 손을 대었다. 바스락, 부서지는 잎사귀의 소음에 놀란 것인지 그는 조금 움찔했다. 내가 죽인 거 아냐. 드렉슬러는 진심을 담아 쏘아붙였다. 그가 선물한 것이었으므로, 아무리 귀찮아도 물을 주고 볕을 쬐였다. 그는 화가 난 듯 돌아섰다가, 이내 침대에 도로 얼굴을 파묻었다. 정말로, 내가 죽인 거 아냐.


드렉슬러는 차분히 기다렸다. 늘 기다렸다. 변화를 가져오는 쪽은 로라스였다. 사람들은 드렉슬러를 제멋대로인 사람이라고 평했지만 정작 드렉슬러의 일상은 늘 그의 발걸음을 쫓았다.


“좋은 아침일세.”


기분이 나아진 듯, 베갯머리에 고개를 부비며 그가 말했다. 얼굴 윤곽을 따라 뭉그러지는 베개는 드렉슬러의 것이었다. 그는 그 헝겊 덩어리에 이마를 댄 채 무언가를 찾듯 눈을 감았다. 드렉슬러는 그것이 마치 외출한 주인의 신발을 문 개 같다고 생각했다.


“오늘은 산책을 갈까?”


시선이 어긋났지만 웃어 보이려 했다. 되지 않아 빵을 굽는 그의 뒤에서 머뭇머뭇 돌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는 늘 드렉슬러의 자리를 먼저 준비해 주었다. 이내 자리에 앉은 그는 신문을 접어 들었다. 커피가 한 모금 줄어갈 때마다 신문이 한 장, 한 장 바스락대며 넘어갔다. 뒷장에서부터 휙휙 넘겨보는 드렉슬러와 달리 로라스는 1면부터 천천히, 피하지 않고 읽어나갔다. 눈을 감고 소리만을 좇았다. 종이가 접히는 소리, 토스트를 베어무는 소리, 잔의 짤그랑거리는 움직임, 보지 않아도 선히 떠오르는 일상의 풍경.


늘 그렇듯이, 로라스가 깨어 주위를 훑고 드렉슬러 몫의 아침을 접이식 탁자 오른편에 놓아주고 신문을 앞장부터 읽어나가듯이, 그들의 산책은 3개월 만이라도 같았다. 차마 손은 잡지 못해도 서로가 느껴질 만큼만 거리를 띄우고, 계절마다 돌아올 물건을 새것인 양 늘어놓은 가게들을 지나, 벽돌길 끝의 작은 카페에 이르면 드렉슬러는 자리에 앉았고 로라스는 주문을 했다.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이 든 소다와 아이스티, 겨울엔 따뜻한 홍차와 레몬티. 로라스는 그곳에서도 무언가를 읽었고 드렉슬러는 카페 안에 모여든 사람을 얼마간, 나무를 끼워 넣은 창밖의 사람을 얼마간 지켜보다 지루해지면 로라스에게 기대어 그가 손을 얹은 페이지를 넘겨버렸다. 로라스가 먼저 질리는 일은 없었으므로 늘 그는 드렉슬러가 넘겨버린 잡지를 덮고 팁을 놓아둔 뒤 드렉슬러를 데리고 일어섰다. 한 번도 마저 읽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드렉슬러는 눈을 감고 걸어도 헛발을 디디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루하지 않아? 물어도 대답은 없을 것이다. 찬바람이 불어 목도리를 두른 로라스가 그 털실 꾸러미에 살며시 고개를 묻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서로가 준 것들을 아꼈다. 빼앗는 것은 늘 시간이다. 드렉슬러는 앞서 걸었다. 목적지도 할 일도 전부 정해져 있는 빙글빙글 도는 시간, 그래도 좋았다.


세 걸음을 더 디디면 오렌지색 페인트가 묻은 낡은 전화박스가 있고, 우리는 키스를 할 것이다.


열다섯 걸음 뒤엔 색색의 양초를 파는 가게가 있어, 그는 성상 옆의 촛대에 새로 얹을 초를 고를 것이다.


스무 걸음 뒤엔,


백 걸음 뒤엔,


이 시간이 전부 흐르면.


로라스를 향해 뻗었던 손이 빈 채 허공을 붙든다.


불러도 대답 없는 그는 조금 떨어진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고 있었다. 일탈, 차갑고 동그란 일탈을 양 손에 들고 그는 드렉슬러에게 돌아온다. 한겨울에 미쳤냐. 그냥, 그저 눈에 들어오기에, 자네가 좋아하잖나. 그는 답지않게 변명을 하며 분수대 옆에 자리를 잡는다.


어린아이처럼 양손에 초코봉봉을 쥔 꼴이 우스워, 조금은 간지러워 받아드는 대신 입을 크게 벌려 베어문다.


분수대가 뿜어내는 물줄기는 무색투명하게 부서져 떨어진다.


아무런 감각도 없이, 투명히.


화가 나 벌떡 일어섰다. 성큼성큼 걸었다. 로라스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볼 수 있을 리가 없다. 화가 난다.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


죽은 자신을 잊지 못하는 로라스도,


그를 떠나지 못하는 자신도.


여전히 꼴사납게 앉아 있는 그를 향해 소리를 지른다. 한심한 새끼, 멍청한 새끼. 하지만 들릴 리도 닿을 리도 없다. 아무리 돌고 돌아도, 내게는 멈추어버린 시간 가운데 너만이 천천히, 내게서 멀리 흘러가고 있음을 아는데도, 그런데도 화가 난다.


달려가 그에게 멈추어선다. 아무 감촉도 뜀박질에 벅차야 할 호흡도 없이 빈 손을 뻗어 그를 마주하고 입을 맞추었다.




그럴 리 없는데도 그의 입술이 닿은 듯 간지러운 감촉이 순간 입술에 머물었다. 깜짝 놀라 손에 든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고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입술을 매만졌다. 마침내 울컥하고 서러움이 몰려들자 따사로운 태양 아래서 그는 정말로 혼자 남겨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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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