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7)






 “어쩌죠?”

 “으음.”


드렉슬러는 연구실 바닥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스패니얼 강아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사실 연구원 다섯에,


 “그냥 키우면 안 되는 건가?”


덤터기 군인까지 가세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수의학자들이 강아지에 딸려보낸 서류가 문제였다.


 “가뜩이나 좁은데 연구용도 아니 걸 마냥 키우진 못해.”

 “덩치도 작은데.”

 “무엇보다, 강아지 뒤처리할 만큼 한가한 놈이 여긴 없어. 너라면 모를까. 어차피 너도 미션 배정되면 끝이고.”


진단서를 흔들었다. C동에서 보내온 결과는 좋지 않았다. 유독물질에 의한 호흡기 영구손상. 계획하던 실험에는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나쁘게 말하자면 쓸모가 없어진 셈이었다. 하지만 누구도 안락사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고 드렉슬러는 그 점은 마음에 들었다.


 “저는 혼자 사니까요…….”

 “자랑이다.”


앨튼은 처음부터 생각에도 없었다. 소렐은 집이 너무 멀었다. 코브는 고양이를 키웠다. 가일의 아들은 갓난아기였다.


 “딸이 알레르기가 있어서 안 되겠군요.”


스톨리핀까지, 기각. 자신은 애초에 계산에 넣을 것이 못 됐다. 그러면……군인?


 “로라스 씨는 관사에 살지 않아요?”

 “그렇네만…….”


언제 저렇게 친해졌어?


 “키울 사람이 없네……어쩌냐, 너는.”


소렐이 주저앉아 쓰다듬자 강아지는 금방 소렐의 다리 밑으로 기어가 앉았다. 로라스는 조용히 이쪽을 보고 있었다.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강아지에게 이름이 있다는 이야기를 연구원들에게 하지 않았다. 병실에서의 고집스러운 태도를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었다.


 “얘 근데 진짜 귀엽게 생기지 않았어요?”

 “그치, 눈도 예쁘고 털도 딱 보기좋게 섞였어.”

 “로라스 씨가 골랐죠?”

 “맞아, 로라스 씨가 골랐을 거야.”


나거든? 어이가 없어 쏘아주려 했지만 강아지 새끼까지 눈동자 여섯 쌍이 군인 놈을 향하고 있는 탓에 소용이 없었다. 난처한 듯 웃던 로라스가 조심스럽게 대안을 제시했다.


 “비행사나 공군 동료들에게 물어보겠네. 애완동물을 갖고 싶어할 집이 있을 걸세.”

 “그렇게까지 하시면 너무 번거롭지 않겠어요?”

 “누구 말마따나 나는 미션 배정 전이니 괜찮겠지. 어리고 귀여운 강아지니 어렵지 않을 거야.”


점점 비꼬는 재주만 느는 것 같았다. 어쨌든 그는 끝까지 강아지의 이름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앨튼이 보내기 전에 놀아주겠다며 목줄을 매어 해변으로 나갔다. 로라스 씨도 가요, 소렐과 가일에 떠밀려 군인 놈도 사라졌다. 한가하네요, 나는 죽겠는데. 코브가 웃었다. 동료라는 단어가 생선가시처럼 거슬렸다.


로라스는 정확히 나흘 뒤에 입양처를 찾아왔다. 두 아들을 둔 미션 스페셜리스트의 집이었다. 큰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키우던 리트리버가 얼마 전에 죽어 형제가 힘들어하던 터라 크게 반기더라고 했다. 생선가시가 비죽였다. 드렉슬러는 말을 전하는 로라스를 유심히 살폈다. 연구원들이 고맙다며 그를 감쌌다. 괜찮네, 그 말뿐이었다. 그는 강아지를 케이지에 담아 데려갔다. 드렉슬러는 그가 라이카라 청승을 떨었을지, 로드리고라 불렀을지, 이도저도 아니면 말없이 보내 버렸을지 궁금했다.


이따금 드렉슬러는 모니터에서 시선을 떼어, 연구원들을 돕거나 제게 도착한 우편물을 처리하는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굳이 그 눈길에 정의를 내리자면, 속내가 있을 거야, 였다. 하다못해 술 한 잔 사라거나, 이러저러했으니 야근은 면하게 해 달라거나, 저놈이 좋아하는 매너 문제 같은 것이라도. 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는 똑같이 까만 SUV를 가지고 출근해 일을 했고, 연구원 전부가 야근에 들어가면 같이 남았고, 드렉슬러의 폭언에도 종전대로 대처했다. 오히려 주먹이 날아들지 않아 드렉슬러의 긴장을 허무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드렉슬러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리버티호에 탑재할 관측위성의 제어 프로그램이 오류를 일으켰고 소렐과 코브마저 항복하는 바람에 드렉슬러 혼자 수정작업에 몰두해야 했다. 이중으로 좋지 않았다. 위성을 리버티에서 우주공간으로 놓아줄 미션 스페셜리스트가 드렉슬러만큼 영리하지 않다면 오작동에 대처할 수 없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신없이 코드를 뜯어고치다 고개를 들면 로라스가 제 몫인 머그잔을 들고 드렉슬러에게 종이컵을 내밀었다. 휘핑의 높이가 악의적인 것만 뺀다면 지적할래야 지적할 데가 없었다. 드렉슬러가 손을 뻗어 그것을 받아들면, 그는 망설임없이 등을 돌려 연구실의 다른 누군가를 도왔다. 그는 자신이 드렉슬러의 작업을 도와줄 수 없다는 것을 말 한 마디 없이 알아차린 것 같았다.


피곤했다. 머리가 말라붙은 해산물 같았다. 센터 옆 해변에 밀려와 살인적인 햇볕에 쩍쩍 찢어지는 그것들처럼.


드렉슬러는 깨달았다. 사실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저 등이 드렉슬러를 지치게 한다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그러고자 자신을 가다듬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없기에 배어나오는 평온함이 드렉슬러를 탈력하게 한다고. 무엇을 요구해올지 잔뜩 가시를 세워 기다리는 드렉슬러가 도리어 가시에 걸려 발버둥치게 만든다고.


드렉슬러에게는 빚이 있었다. 그것이 말 한 두 마디로 갚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다. 그러기에 요구해오기를 기다렸다. 이곳의 사람들만큼 제 몫에 민감한 이들이 어디 있겠는가? 더구나 그는 비행사였다. 경쟁하고, 질시하고, 동료를 짓밟아서라도 앞서려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람들. 그러나 그는 그저 도와주었다. 더 도울 것이 없으면 떠났다. 그뿐이었다.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다음 테스트가……7월 3일이네요.”

 “그 전에 프로그래밍 마칠 수 있겠어요?”

 “치프 믿어야지. 로라스 씨가 이때쯤 쉬지 않던가?”


로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7월 1일.”

 “잠깐.”


낯익은 날짜였다. 7월 1일……1일이라. 아. 드렉슬러는 코브에게 소리쳤다.


 “코브, 1일에 비번이지? 나랑 바꿔. 29일, 30일.”

 “상관은 없는데 웬일이에요? 모처럼 이틀인데.”

 “야, 로라스.”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들 중 한 가지는 저 표정이었다. 드렉슬러는 최대한 당당히 말했다. 저놈이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할 때 그러듯이.


 “1일에 약속 없지? 시간 내라.”


표정이 단박에 구겨졌다. 지금이라야 했다. 다 보는 앞이라야 거절을 못 하겠지.


 “술이나 하자고. 저번에 불 나고 사례다.”

 “그건.”


그는 무언가 말하려다 다물었다. 그러더니 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락했다. 알겠네. 드렉슬러는 마무리를 했다. 30일 저녁에 주차장에서. 로라스는 황당하다는 듯 드렉슬러를 바라보다 한숨을 쉬어버렸다.


30일은 끔찍했다. 버그가 폭죽이라도 터트린 것 같았다. 허겁지겁 주차장으로 달려가자 로라스가 차에 기댄 채 비아냥거렸다.


 “저녁의 개념이 꽤 다른 것 같군.”


숨이 차 대답하기가 귀찮았다. 조수석에 기어올라 가까운 마트로 가자고 말했다.


 “뭘 하려는 건가?”

 “가자면 좀 가자.”

 “대단한 대접이군.”


마트는 닫기 직전이었다. 서둘러 필요한 것을 샀다.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으로 보아 군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도련님 타입이 분명했다. 카트에 손 대지 마. 엄포를 놓자 한 발짝 떨어져 졸졸 따라왔다. 뒷좌석에 물건을 싣고 네비게이션을 누르며 말했다. 내 집. 로라스는 잘못 들었다고 말해 주라는 듯이 드렉슬러를 바라보았다. 자정 되겠다, 안 가냐? 로라스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들리지는 않았다. 욕일지도 모르는데, 아쉽네.


완전히 밤이 되어 길은 캄캄했다. 헤드라이트로 가끔씩 멈춰선 길짐승이 보였다. 로라스는 솜씨좋게 그 길짐승들을 피해 길을 달렸다. 밤에는 오렌지밭도 청회색 호수처럼 보일 뿐이었다. 로라스가 물었다.


 “1일이라고 했잖나?”

 “곧 1일이지.”

 “밤새워 술 마시는 취미는 없는데.”

 “거짓말은.”


드렉슬러는 창을 내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필요한 공구 하나, 책 한 권 제 때 구할 수 없는 벽지라도 괜찮은 이유가 있다면 이것이었다. 요즈음의 어디에서 은하수를 육안으로 볼 수 있을까. 어디에서 별이 점묘화처럼 산란하는 광경을 볼 수 있을까. 더구나 드렉슬러에게는 오늘을 고른 이유도 있었다. 사례를 하는 데 검약 따위는 불필요한 덕목이었다.


SUV가 천문대의 정면에 멈춰서자 드렉슬러는 냉큼 내려 현관 비밀번호를 풀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미 로라스가 마트에서 산 물건이 담긴 봉지를 들고 있었다. 내가 들게. 됐으니 올라가기나 하게. 로라스는 피곤한 듯이 말했다. 잠들어 버리면 곤란한데. 드렉슬러는 진지하게 뒤에서 따라오는 군인이 ‘그’ 시간까지 버티지 못할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4층의 조형물을 가로지르자 로라스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밖에 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연구원들도 와 본 적이 없으니 이상할 것은 못 되었다. 그러고 보니 연구원들이랑 왜 그렇게 친하지? 그거나 캐볼까?


철문을 열었다. 좁은 계단 위의 보안장치에 그는 혀를 찼다. 익숙한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오랜만의 집이었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전등이 탁 소리를 내며 방을 비추자 그가 피식 웃었다.


 “자네답군.”

 “잘 안다는 것처럼 말하지 마, 징그러워.”


조금 어지럽기는 했다. 드렉슬러에게는 한가하게 방청소를 할 시간이 없었으므로. 사각 소리가 났다. 로라스가 과월호 사이언스를 밟고 당황해하며 발을 털고 있었다.


 “이쪽으로.”

 “초대받고 할 말은 아니네만……이 꼴로 초대할 생각이 나나?”

 “아닌 것 같으면 말하지 않는 게 좋단 생각은 안 드냐?”


웃음소리가 들렸다. 드렉슬러는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한두 사람 지나다닐 정도 너비의 철제 비상계단이 단칸방과 옥상을 연결해 주고 있었다. 옥상은 드렉슬러가 이 외진 단칸방을 고른 유일한 이유였다.


 “아.”

 “멋지지?”


천문대의 꼭대기였다. 절벽을 마주한 시야는 거리낄 것 없이 가득 하늘만을 담아냈다. 인공의 빛 따위 없는 적막 위로 선명한 은하수가 있었다. 여름이었으므로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아득히 먼 자리에서 별들은 저들끼리 반짝였다.


 “잠깐 거기 있어 봐. 사실 사람을 데려온 적이 없어서…….”


드렉슬러는 앉을만한 것을 찾다, 가만히 선 채 하늘을 올려다보는 로라스를 보았다. 경탄. 드렉슬러는 그것이 마음에 들기도, 들지 않기도 했다. 이상한 일이었다. 드렉슬러는 포기하고 일단 제 의자에 로라스를 앉혔다. 그는 이런 것이 정말 익숙찮은지 서둘러 일어서려 했다. 단단한 어깨를 꽉 눌러 겨우 다시 앉혔다.


 “거기서 별이나 보고 있어. 금방 올 테니까.”


노트북 두드릴 때 쓰는 의자를 끌고 계단 위로 올라왔다. 그는 앉아 있는 것이 못내 불편했는지 서성이고 있었다. 시선이 오른쪽의 거대한 구조물로 향했다. 천문대라면 응당 있어야 할, 대구경 망원경이었다. 개방된 돔과 옥상은 연결되어 있어서 원한다면 내려갈 수도 있었다.


 “나는 여기가 좋아.”

 “육안으로?”

 “그렇지.”


로라스는 드렉슬러가 의자를 갖다놓아 두 개를 맞추자 그제야 앉았다. 하지만 드렉슬러는 여전히 할 일이 많았다.


 “뭐 하나?”


옥상의 캐비닛에서 물건들을 끄집어내는 드렉슬러를 보며 로라스가 물었다. 드렉슬러는 마트의 봉투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술 마셔야지.”


접이식 탁자를 펼쳐 세웠다. 로라스가 그 위에 맥주캔을 올려놓았다. 그가 불안한 듯 봉투 안을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뻔했다.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드렉슬러가 끌고 온 쇳덩이가 말을 대신했으므로. 로라스는 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낭만적인걸.”

 “너만 할까.”


안 그러냐, 시인 조종사님? 툴툴거리자 그는 가까이 다가와 그릴을 제대로 세워 주었다.


 “도통 안주를 뭐로 하려는지 알 수가 없어서 궁금했는데……생각외야.”

 “네 머리로 예상할 수 있는 범주에서 살면 연구소 그만둬야지.”


로라스는 천문대 바깥을 돌아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를 여기서 밀어버리면 시체 찾는 데 얼마나 걸릴지 궁금하지 않나?”

 “스마트폰에 GPS있어서, 아쉽게도 그건 안되겠네.”

 “이거 말인가?”


어, 저게 왜 저놈 손에 있어.


 “야, 내놔.”

 “자네는 지금 해야 할 일이 있잖나?”

 “내놔, 새끼야!”


행여나 부서질까 함부로 힘을 주지도 못하는 드렉슬러를, 로라스는 제대로 놀려먹었다. 안주 가져오면 돌려주지. 지쳐버린 드렉슬러는 느긋하게 의자에 앉아 맥주캔을 따는 로라스를 노려보는 수밖에 없었다. 로라스가 여름 밤하늘과, 이따금 천문대와 절벽의 메마른 모습을 눈에 담으며 맥주를 비우는 동안 드렉슬러는 안주거리를 구워야 했다. 가져왔다, 빌어먹을 놈아. 드렉슬러가 접시를 내리치다시피하고 결국 스마트폰을 돌려받았을 때엔 맥주는 이미 세 캔째였다.


 “어, 소시지.”

 “내가 먹었는데.”

 “돼지 새끼야.”

 “먹고 싶으면 구워 오면 되잖나?”


캔이 굴러다닐수록 대화는 유치해졌다. 절경이고 낭만이고 하는 것은 알코올과 함께 증발해버리고 없었다. 드렉슬러는 화를 냈다.


 “씨발, 손이 없냐 발이 없냐. 소시지 굽는 것도 네가 못 하냐?”

 “난 손님이니까.”

 “대단한 핑계다, 너무 대단해서 절이라도 하고 싶네. 아이고, 내가 미쳤지. 내가 왜 군인을 여기다가!”


로라스가 빈 캔을 휙 던졌다. 캔은 벽을 넘어 절벽으로 떨어졌다. 드렉슬러는 취한 와중에도 저 작자가 쓰레기 무단투기를 하는 광경은 꽤 진귀하리라고 생각했다. 로라스가 기분나쁘다는 듯 투덜댔다.


 “그놈의 군인.”

 “군인, 군인, 망할 군바리.”

 “그만할 때도 됐잖나?”

 “듣기 싫으면 전역해라?”

 “군인 보기 싫은 자네가 퇴사하는 게 낫지 않나?”


드렉슬러는 빈 캔으로 로라스를 툭툭 쳤다.


 “두고 봐라, 그놈의 군인, 다 쫓아낼 거야. 아니아니, 필요없게 만들어야지……죽이고 죽는 것밖에 모르는 새끼들.”

 “드렉슬러.”


로라스가 굳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드렉슬러는 웃음을 터트렸다.


 “넌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하지?”


답은 없었다. 드렉슬러는 한번 터진 웃음을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우스웠다.


 “올라가지 못해서……선발에 떨어져서, 그래서 너 같은 놈들을 질투한다고. 조종사들은 거창한 학력이 필요없으니까. 아냐, 아니지. 나도 알아. 내가 병신인 줄 아냐.”


푸흐, 다시 웃었다. 창자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병신은 병신이네. 그래, 내가 왜 떨어졌게? 난 도통 떨어질 이유 같은 거 없었어. 그래, 그 날까지는. 그 개같은 군인이 내 인생에 끼어들기 전까지는.”

 “롤즈 소령 말인가?”


드렉슬러는 미친 듯이 웃었다. 롤즈? 그 양반을 내가 왜? 자기 딸밖에 모르는 멍청한 운전수를? 코 끝이 시큰하도록 웃고서 드렉슬러는 말을 이었다.


 “나는 조그만 차가 있었어. 대학에서 같이 박사 딴 동기놈이랑 비행사에 지원했지. 그놈은 뭐 떨어졌겠지만 지금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빌어먹을 휴스턴으로 가던 중에, 그래, 씨발 나 운전할 줄 안다. 아니, 그날까진 했지. 그 망할 군용차가 내 조수석을 들이받아버리기 전까지는.”


불길, 휘감아오는 악취, 연료와 피의 비린내, 이성이 알려오는 죽음과 몽상적 희망. 공포.


 “그 단단하신 헤드가 우리 순진한 박사 친구를 으깨버리고 내 폐를 작살내는 동안, 차 안의 장성께서는 뭘 하셨을까? 그렇게 말하셨다더군. 귀찮은 일이 생겼군, 이라고. 귀찮은 일이지! 감히 소장 앞에 끼어든 과학자 나부랭이 둘이라니!”


드렉슬러는 신체검사에서 탈락했다. 통보도 병원 중환자실에서 받아야 했다. 장례를 치렀지만 그 소장에게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선거가 끝난 뒤였다. 주지사와 상원의원, 장관과 면식이 깊은 소장을 끌어낼 방법은 드렉슬러에게는 없었다.


 “나는 네가 싫다. 넌 빌어먹게 좋은 놈이지만, 넌 하필 군인이거든. 부정할 수 없이.”


유성우가 쏟아졌다. 그러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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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