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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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스는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가 고개를 털었다. 까만 SUV는 보름을 센터 주차장에 놓여 있었다. 어차피 숙소는 가까워 굳이 차를 탈 필요는 없었지만 공군 파일럿 시절에 사놓은 것이라 처분하기도 애매해 그대로 쓰고 있었다. 핸들을 초조히 두드리다, 로라스는 스마트폰을 꺼내 센터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했다. Dario Drexler.


단단히 잠긴 문 앞에서 연구원들은 지독한 보안코드에 대해 한탄했다. 로라스는 우두커니 선 채, 당혹과 모멸감과 그리움이 뒤섞인 낯선 감정을 느끼며 그 목소리를 되새기고 있었다. 한참 만에 물을 수 있었다.


 “저 사람이 책임자입니까?”

 “아, 네. 다리오 드렉슬러, E연구동 부소장이긴 한데……본인이 뭐 맡는 걸 귀찮아해서…….”

 “다리오?”

 “네, D―A―R―I―O."


연구원은 로라스가 잘 듣지 못해서 되물었다고 생각했는지 철자를 풀어주었다. 아니었다. 로라스는 뜻밖의 낯익음에 당황했다. 데이터베이스가 작은 화면 안에 그에 대한 정보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34세. 천체물리학·수학 박사, 생물학 석사. 학위 취득 연도로 보아 천체물리학은 28세에, 수학은 그 다음해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모양이었다. 머리 좋은 것만 믿고 까부는 타입인가. 천재 같은 건 센터에 널려 있건만. 로라스는 스크롤을 내렸다.


 「출생지 : 마드리드」


이거였군. 로라스는 액정을 꺼버렸다. 다리오, 라는 이름에서 막연히 짐작은 하고 있었으나 확인하는 것과는 달랐다. 숙소로 가는 대신 꽃을 사 보스턴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재앙. 로라스는 연구소에서의 시간을 그렇게 정의내렸다. 공군의 실전훈련이나 센터의 긴급상황 대비 훈련을 견뎌낸 자신이 땅을 밟고 있으면서 무언가를 괴롭다 여기는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는 연구원들을 진심으로 동정하게 되었다.


아니, 수정하는 게 좋을 것이다.


 “야, 펜.”

 “왼손 앞에. 그리고 로라스 대위라고 몇 번…….”

 “닥쳐.”


드렉슬러는 시선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왼손을 더듬어 펜을 쥐었다. 심부름을 나갔던 연구원이 마침 테이크아웃 커피를 갖고 들어오고 있었다.


 “치프, 여기요.”

 “어, 고마워. 넌 왜 안 사고?”

 “저야 뭐…….”

 “뭐하러 카드 준 건데. 다음부턴 여섯 잔 사와.”


잿빛 머리의 청년이 머리를 긁적였다. 앨튼은 연구실의 막내였다.


 “저……일곱 잔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로라스 씨까지 해서…….”


녹색 눈이 불안한 듯 힐끔 건너다보았다. 드렉슬러는 로라스를 돌아보지도 않고서 커피 뚜껑을 열었다. 휘핑 없잖아, 아오. 로라스는 어린애도 아니고, 하고 입 밖으로 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드렉슬러의 다음 언사가 커피 취향 따위는 아무 상관없게 해 주고 말았다.


 “저걸 왜 챙기냐? 지 돈으로 사마시라 그래.”


원숭이는 차라리 살아 있기라도 하다. 저 작자는 로라스를 인간은커녕 생물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에게 사람 비슷한 대접을 받는 건 연구팀의 다섯 명 정도, 나머지는 비존재에 가깝고, 로라스는,


 “야, 데이터 출력됐으면 가져와라.”


물건 이하다. 일일이 날 세우고 싶지도 않았건만 엄연히 직급이 있는데 이런 취급을 감내할 필요도 느껴지지 않았다.


 “알베르토 로라스라고 했습니다.”


드렉슬러는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니 이름 알거든?”

 “잊어버리지 않았다니 다행입니다만, 그러면 제대로 불러주십시오.”


빙글, 의자가 돌았다.


 “씨발, 난 이래서 저것들이 싫어.”

 “그 ‘이거’니 ‘저거’니 하는 물건 취급도 그만둬주시죠.”

 “왜? 주제를 알아야지.”

 “저기……치프…….”


드렉슬러가 무어라 말하려는 앨튼을 밀었다. 로라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옅은 푸른 눈이 우습다는 듯 따라왔다.


 “무례하시군요.”

 “넌 부품한테 예의를 지키냐?”


하, 어처구니없어 절로 실소가 터졌다. 부품? 부품이라고?


 “매뉴얼 따라하는 것밖에 못하는 주제에 선장이니 조종사니 이름만 달았다고 지랄들이야. 고작 조종간 몇 번 기울였다고 목에 힘이란 힘은 다 들어가지. 네놈이 리버티에서 앉아 있는 거 말고 뭘 했는데?”


더는 맞춰 줄 수가 없었다.


 “그리 잘 알면 직접 해보지 그러나? 여기 땅벌레처럼 처박혀 있지 말고?”

 “성질 나오는 거 봐라. 군바리가 다 저 모양이지. 난 여기서 더 중요한 일이 있어서 말이다.”


드렉슬러가 데이터 가득한 모니터를 가리키며 으쓱했다. 로라스는 비웃었다.


 “올라갈 실력이 안 되는 거겠지.”

 “너 같은 머저리도 가는데 기준이란 게 있기나 하겠냐?

 “말해보지 그래. 골방에 처박혀서 커피만 깨작이니 체력이 안 되던가? 천재인 줄 알았더니 여기 와보니 별 거 아니던가?”

 “리버티랬나?”


붉은 머리칼의 천문학자가 싸늘하게 웃었다.


 “내가 장담하는데, 네가 선장이랍시고 조종간 잡으면 리버티 터진다. 보조탱크 분리하기도 전에 뻥! 터질 거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드렉슬러는 의자채로 날아갔다. 서류며 USB며 필기구가 와장창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로라스는 뒤늦게 민간인에게 물리력을 행사하면, 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엎어진 의자에서 욕을 하며 기어나오는 낯을 보자마자 한 대 더 쳐주고 싶다는 충동이 치밀었다. 그리고 저 미친 군바리가, 라고 소리지르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걷어차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번에도 쿨럭거리며 바닥을 뒹구는 모습을 보고서야 구두가 아니라 워커를 신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잘나신 천문학자가 코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연신 욕을 했다. 미친 새끼, 정신 나간 새끼, 저딴 게 왜 내 연구실에……. 로라스는 피를 뚝뚝 흘리는 개자식의 앞에 앉아 옷깃을 틀어쥐었다.


 “나는 리버티에 탄 사람들을 무사히 올려보내고 귀환시켜. 그게 내 임무다. 여기 편히 앉아있으니 사람 목숨이 장난 같아? 다섯 명 정도는 사람으로도 안 보여?”


부어오르기 시작한 얼굴이 멍하니 바라보았다. 팽개치고 일어섰다.


 “올라가지 못하는 게 당연하군.”


내뱉으며 연구실을 나와버렸다.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았다. 쓰레기 같은 작자라도 민간인에게 손을 댔다는 사실이 못내 찜찜했다.


낮이었지만 센터에 머무르기가 싫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어쩔까 하다 일단 차에 몸을 실었다. 사람을 태울 일이 없어 하나 둘씩 짐이 쌓인 조수석에서 책을 하나 끄집어냈다. 핸들에 책을 얹어놓고 시선을 내렸다. 조금이라도 마음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이 길로 가다 보면 어쩌면

 별들에게 다다를지 모르지

 하지만 나는 참 바보여서

 거기 다다를 자격은 못 되겠지



자격, 자격이라.


비행사들은 모두 서약을 한다. 유사시, 통제불능에 빠진 우주선이 도시 위로 추락하게 될 경우 시민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관제소의 판단에 따라 선체를 폭파시키는 데 동의한다는. 자폭 프로그램 실행부터 폭발까지는 5초도 걸리지 않는다. 우주복을 껴입은 비행사들은 자결도, 탈출도 불가능하다. 그저 선체와 함께 공중에서 산화해야만 한다. 그 아래에 있을 수십, 수백만의 이름모를 누군가를 위해. 그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 조종사들은 훈련하고 또 훈련한다. 어떤 상황이 와도, 완전히 이성을 잃어도 몸은 반응하도록. 군에서인가, 세계대전 시절 한 소총병이 머리에 총을 맞아 두개골이 날아간 상태에서 뒤의 병사에게 소총을 넘기곤 그제서야 쓰러지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훈련이란 그런 상황을 상정하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성도 프로그램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진정 최악을 상정하고서.


주머니에서 알림음이 났다. 센터에서는 전용 메신저를 사용하기에 문자메세지 알림음이라면……짐작이 가지 않았다.


모르는 번호였다.


 「미안하다. D.D」


잠시 의아해하며 화면을 들여다보던 로라스는 그것을 보낸 사람이 누군지 깨달았다.


마음이 몇 배로 번잡해졌다. 치프로서의 책임감? 헛웃음이 나왔다. 의자에 몸을 기대 얼마간 생각하다 그만두었다. 몇 달, 운이 나쁘면 몇 년 더 볼 사이였다. 로라스는 군인이었고 그는 학자였다. 그뿐이었다.


다음날 아침에 로라스가 연구실 앞에서 벨을 눌렀을 때 안에는 드렉슬러뿐이었다.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치자 당혹스러워졌다. 로라스는 자신이 참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사과하지.”


물론 예전만큼 예의를 갖출 생각은 없었지만.


 “뭐……그래, 오해했다고 해두자.”


드렉슬러는 알 듯 말 듯한 소리를 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한쪽 발이 초조한 듯 바닥을 두드렸다. 그러다 갑자기 물어왔다.


 “차 있냐?”


얼결에 끄덕이자 갑자기 얼굴이 밝아졌다. 종잡을 수가 없다. 로라스는 연구실에 한 발짝도 디뎌보지 못하고 떠밀려 도로 차에 타야 했다.


 “아 뭐 이렇게 쌓아놓고 다녀. 군인 티내냐?”


드렉슬러는 당당히 조수석을 차지하고는 시트 위에 있던 것들을 쓸어담아 뒤로 던져버렸다. 로라스는 책이 구겨지지 않았기를 바랐다. 시동을 걸자 드렉슬러는 제 것인 양 네비게이션을 조작해 좌표를 맞추더니, 벨트를 매는 로라스를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애 같아.”


휘핑에 시럽까지 타먹는 주제에. 그러나 로라스는 참기로 했다. 센터 주차장을 나와 대로로 들어서자 좋은 생각이 났다. 드렉슬러는 계속해 투덜거리고 있었다.


 “뭐 장식도 하나도 없고. 네비 소프트도 업데이트 안돼있고. 아 씨, 이건 뭐야, 소설?”

 “조용히 좀 하게.”

 “발에 걸리는 걸 어떡하냐?”


고등학생이라도 된 것 같군. 로라스는 씩 웃었다.


 “그거 아나?”

 “뭘?”

 “자네처럼 구는 사람들은, 탈것에 타면 자기 목숨이 내게 달렸다는 걸 잊어버리더군.”


말이 끝남과 동시에, 로라스는 엑셀을 힘껏 밟았다. 계기판의 수치가 사정없이 치솟았다. 가속이 잘 되는 차종인 탓에, 드렉슬러는 순식간에 날려가 이마를 박았다. 씨발! 이젠 새삼스럽지도 않은 욕설을 뱉으며 드렉슬러가 버둥거렸다. 120㎞……150㎞……200㎞/h. 야! 세워! 세워! 세우라고 미친 새끼야! 커브를 돌 때마다 얄미운 몸뚱이가 이리저리 굴러가는 모습이 퍽 만족스러웠다. 시가지가 눈에 들어올 즈음 속력을 낮추자 그는 허겁지겁 벨트를 찾았다. 다 왔네만? 웃으며 묻자 그는 이마에 발간 혹을 하나 달고 욕을 했다.


주소대로 멈춘 곳은 펫샵이었다. 의아해 돌아보자 이미 나가고 없었다. 가게에 들어가보니 그는 강아지들을 보고 있었다. 시계를 보았다. 오전 11시 36분. 일하다 이게 무슨 짓인지. 로라스로서야 ‘도우러’온 것이니 그의 의향에 맞춰 줄 수밖에 없는 일이었지만, 아무리 보아도 일하는 모습으로 비치진 않았다. 하지만 표정만은 꽤나 진지했다.


한참 동안 강아지들을 보고 있던 드렉슬러가 한 마리를 꺼냈다. 2개월에서 3개월쯤 되어 보이는 스패니얼이었다. 작은 걸 좋아하나. 로라스는 푸들이며 요크셔테리어며 애완견들이 즐비한 샵 안을 둘러보았다. 한 손 크기의 강아지들이 사람 손을 보고 배를 뒤집으며 놀아달라 투정을 부렸다. 드렉슬러는 한 번 웃기만 하더니 바로 주인에게 값을 치렀다. 조그만 카발리에 스패니얼이 담긴 케이지가 로라스의 차에 실렸다. 사료며 목줄이며 장난감이 담긴 봉투를 가져오는 건 로라스의 몫이었다. 강아지는 환경이 바뀌자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로라스는 벨트를 매며 물었다.


 “어디로 갈까?”


드렉슬러는 별 것을 다 묻는다는 듯 대꾸했다.


 “당연히 연구소지.”

 “강아지는?”

 “그러니까 연구소지.”


로라스는 자신이 뭔가 잘못 이해했음을 느꼈다.


 “키우는 게…….”

 “키우지,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은 다 이 모양인가?


 “그러면 굳이 여기까지 오지 않아도…….”

 “싫어. 그놈들은 맨날 비글만 준다고.”

 “실험은 안정성이 중요한 것 아니었나?”

 “약 처먹는 건 원래 아픈 사람이지 건강한 사람이 아냐.”


로라스는 포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저 강아지를 샵에 돌려주고 오기라도 할 것이 아니라면야, 언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를 몰아 센터에 돌아오자 드렉슬러는 케이지를 안고 내렸다. 당연하게 무거운 건 내 몫이군. 로라스는 말없이 봉투를 들고 드렉슬러를 뒤따랐다. 언제나 꽉 닫힌 연구실 문 앞에 케이지를 내려놓고, 드렉슬러가 키패드를 눌렀다. 강아지는 잠들기라도 한 듯 조용했다. 로라스는 건너다보다 물었다.


 “Spear?” 


드렉슬러가 무어에 데인 듯 화들짝 돌아섰다.


 “넌 군바리가 왜 훔쳐보고 지랄이야!

 “보지 말라고 말한 적 없잖나?”

 “아 씨발, 진짜.”

 “말 안 할 테니 걱정 말게.”


지문 스캐닝을 끝으로 문이 열렸다. 뭐 그리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지. 안보에 목숨을 저울질하는 군인인 로라스조차도 혀를 내두를 만한 신경증이었다. 로라스는 사료며 장난감이 든 봉투를 드렉슬러의 의자 옆에 내려놓았다. 튜브와 주사를 꽂고 유리 상자 안에서 공놀이를 하는 스패니얼이라. 끔찍하군. 마침 드렉슬러가 인큐베이터 하나를 연결하고 있었다.


케이지 안에서 작게 깽깽 소리가 났다. 로라스는 물었다.


 “암컷인가?”

 “수컷.”

 “이름은 뭘로 할 건가?”

 “이름을 왜 지어?”


드렉슬러는 세 번째로 한심하다는 듯 로라스를 쳐다봤다. 로라스는 혀를 찼다.


인큐베이터가 연결되자 드렉슬러는 케이지에서 강아지를 꺼냈다. 아직 드렉슬러의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작은 개였다. 흰색과 갈색이 고루 섞인 털이 강아지답게 보들하니 돋아 있었다. 드렉슬러는 강아지를 인큐베이터에 넣고 작은 칩 하나를 붙였다. 강아지가 귀찮은 듯 붙인 자리를 긁자 조심조심 달래기도 했다. 유리상자의 뚜껑이 닫혔다.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로라스의 것이 아니었다. 드렉슬러는 전화를 받더니 삼십 분 뒤에 오겠다며 나갔다. 로라스는 유리상자 안에 엎드려 자신을 보고 있는 강아지에게 다가갔다. 새까만 눈이 어린 생물답게 티 하나 없이 맑고 동그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로라스는 유리 너머의 어린 생명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라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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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