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3)



* 0~2의 몇 가지 세부사항을 수정했습니다






어두웠다.


로라스는 기계적으로 팔을 뻗다가, 이 날에 대해 떠올렸다. 신음이 새었다. 시트를 틀어쥐어도 울려대는 소리는 전혀 작아지지 않고, 동향인 방은 아직 어두웠고, 로라스는 휴일이었다.


벨소리는 끊임없이 울렸다. 로라스는 무음설정을 해두지 않은 자신을 목졸라버리고 싶었다. 고개를 반대로 돌려 눈을 감아버렸지만, 한 번 끊겼던 벨소리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로라스가 받을 때까지 걸어댈 요량이 분명했다.


손을 더듬어 잡아챘다. 4시 23분. 대체 누가 이 시간에, 더구나 저장되어 있는 번호도 아니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고 수신을 눌렀다.


 “누구십…….”

 “로라스냐? 로라스 맞지?”


끊어버릴까. 로라스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피곤한 가운데 짜증과 더불어 유쾌하지 않은 기시감이 텁텁하게 올라왔다.


 “휴일이네만…….”

 “아니까 전화했지! 야, 너 차에…….”

 “꼭 지금 해야 하는 게 아니라면 나중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자야 했다. 전화 너머로 쩌렁쩌렁 울려오는 외침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야, 로라스, 알베르토 로라스!”


아, 로라스는 절로 한숨을 뱉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주저앉았다. 슬리퍼에 발을 끼우며 물었다.


 “대체 뭔가.”

 “어제 차에서 상자 내릴 때 몇 장 떨어진 것 같아.”

 “그래서?”

 “그래서는 뭐가 그래서냐? 찾아야지, 일이잖아!”


참 대단한 일이군. 로라스는 더듬더듬 키를 찾으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찾으면 사진으로 전송해주겠네.”

 “사진은 무슨 사진이야. 갖고 와. 멀지도 않으면서.”


로라스는 드렉슬러가 눈앞에 있다면 빗장뼈가 부러질 때까지 밟아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뒷좌석 문을 열었다. 한동안 피로 때문에 정리를 하지 않아 난장판이었다. 로라스는 여기저기 떨어진 책부터 줍기 시작했다. 동그랗게 말아 던져놓은 셔츠가 두 벌 있었다. 의자 틈새에 수건도 하나 말려들어가 있었다. 언제 마셨는지 캔 하나도 굴러다녔다. 책을 앞좌석에 옮기고 빨랫감과 쓰레기를 꺼내고 보니 종이쪼가리 몇 개가 보였다. 시트에 하나, 바닥에 둘, 문틈에 하나였다. 로라스는 그것들을 집으며 더 있는지 훑었다.


빨래와 쓰레기를 현관 안에 넣고 차에 올라타자, 문득 스콜라 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봉투에 담긴 것이 전부 비공개 자료들일까? 로라스는 피곤했다. 5시 14분이었다. 관자놀이를 더듬다, 로라스는 결국 시동을 걸었다. 종이가 좋다지 않는가, 이상한 인간이었다.


오전 5시 반에도 센터는 밝았다. 예산이 점점 줄고 있어 센터는 한정된 인력으로 예전만한 성과를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예산이 삭감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삭감의 폭은 줄일 수 있었으므로. 그러고 보면 이 센터의 연구원들은 경제적인 면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푸대접을 받으며 일하는 인간들인 셈이었다. 군에서 ‘특수 파견’ 형태로 차출된 신분인 로라스와는 달랐다. 그것이 싫은 것일까? 연구실의 개폐 요청 스위치를 누르며 로라스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생각했다.


 “야, 너……!”


드렉슬러였다. 설마 늦었다느니 하지는 않겠지. 봉투를 꺼내려 했다.


 “너 코드명 Dragon이라며? 네가 골랐냐? 유치해서 웃겨 죽…….”

 “로라스 씨, 이게요…….”

 “Dragon이래! 꼬리는 없냐? 야, 네 승무원들은 좋겠다? 추락해도 네가 날아서 옮겨주면 되겠네!”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드렉슬러는 웃어대느라 정신이 없었고 앨튼이 쩔쩔매며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건지. 놓고 가기만 하면 된다. 로라스는 여전히 킬킬거리는 드렉슬러의 책상 위에 봉투를 올려놓고 돌아가려 했다. 우유라도 한 잔 마시고 정오까지 자야겠다고…….


 “어, 그거 코브 노트북에 PDF 있더라.”


로라스는 피곤했다.


고의라기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개자식.”


당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 했지만.


 “아침나절부터 손찌검이야, 미친놈이.”

 “고의가 아닐세.”

 “무의식으로 폭력을 행사하면 정신병원에 처넣어야 하는 거 아니냐?”

 “지금은 의식적으로 치고 싶어지는군.”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은 천문학자가 욕을 했다. 웅얼거려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로라스는 드렉슬러의 등 뒤에 연구원들이 모여 웃음을 참는 것을 보았다. 소렐이 손짓으로 잘 했다는 제스처를 보냈다. 로라스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멎었나?”


드렉슬러는 손수건을 떼보았다. 피가 둥그렇게 묻어 있었다.


 “대충.”

 “찾았으면 연락을 하게. 헛걸음시키지 말고.”

 “아니 자료야 됐고. 코드명 너무 웃겨서 물어보려고…….”

 “더 쳐도 되겠나?”


그가 의자바퀴를 굴려 1미터쯤 뒤로 도망쳤다. 살 만한가 보군. 로라스는 약간 남아있던 죄책감을 털어버렸다. 드렉슬러가 흘끔 눈치를 보며 물었다.


 “진짜 Dragon이냐?”

 “……그렇네.”


풉, 다시 웃어대려는 드렉슬러를 노려보았다. 로라스는 애초에 제 코드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대체 누구 작품이냐 그거. 아폴로 계획 이후로 그렇게 거창한 작명은 처음 본다.”

 “자네는 아폴로 계획 때 태어나지도 않았잖나.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비행사는 선택권이 없어.”


로라스는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눈이 뻑뻑했다.


 “갈매기 같은 멀쩡한 건 다 써버렸고……남은 건 갈라파고스거북이나 남방안경원숭이 같은 것뿐이라는데 자네라면 뭘 고르겠나?”

 “그래도 웃긴 건 웃겨.”

 “웃을 시간에 생물학자들더러 동물 이름 좀 많이 찾아달라고 해주지 그래.”


드렉슬러는 비웃음보다는 폭소에 가까운 소리를 냈다. 로라스는 의자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드렉슬러가 손수건을 휴지통에 던져넣으며 말했다.


 “아침이나 먹고 가라.”


역시나 의사와는 무관히 진행되었다. 앨튼이 연구실 한구석의 문을 열었다. 로라스는 그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드렉슬러가 일어섰다. 나머지 연구원들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옆방으로 들어간 사람은 드렉슬러뿐이었다. 로라스가 약간 의아해져 연구원들을 바라보자 코브가 웃었다.


 “연구실에서 식사할 일 생기면 치프가 해요. 우리 여섯 중에 솜씨가 제일 좋거든요.”


벽 너머로 드렉슬러의 느긋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앨튼, 개 밥 줘라.


사료를 보았는지 강아지 특유의 높은 낑낑거림이 들렸다. 로라스는 통 안에 사료 한 움큼을 넣고 있는 앨튼의 옆에 섰다. 강아지는 이제 뾰족했던 귀가 접혀 퍽 스패니얼다워졌다. 발바닥도 완전히 까맸다. 털이 길어져 보드랍게 늘어져 있었다.


 “많이 자랐군.”

 “금방 크죠. 어리니까요.”

 “뭐라고 부르나?”


앨튼은 뚜껑을 닫으며 갸웃했다.


 “이름은 안 붙였어요. 치프가 그러라고 하니까요.”

 “자네들끼리도?”

 “전 치프 지시가 맞다고 생각해요.”


아직 작은 강아지는 열심히 사료를 먹고 있었다. 튜브 하나가 왼쪽 앞발에 연결되어 인큐베이터 밖으로 이어졌다. 로라스는 그 선을 따라가보다 그만두었다. 먹으러들 와라, 드렉슬러가 외쳤다. 라이카는 물을 할짝이다 로라스를 바라보았다.


강아지는 잘 자랐다. 건강하게 자라는 만큼이나 몸에 부착되는 장비도 늘어 갔다. 로라스는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편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자신은 과학자는 영영 되지 못할 모양이었다. 혼자서, 튜브와 전선에 감긴 강아지의 까맣고 촉촉한 눈을 마주할 때마다 로라스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안녕, 라이카, 하는 인사뿐이었다. 무어라고 하겠는가. 건강하라고? 오래 살라고? 약품과 실험으로 일생을 보낼 생명에게 장수가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가?


먼 과거의 일이었다. 라이카는 대기권을 뚫고 위성 궤도까지 도달한 최초의 생명체였다. 모스크바의 떠돌이 잡종견이었던 라이카가 우주 계획에 발탁된 것은 행운이었을까? 1957년 11월 3일, 인공위성에 실리던 라이카는 자신이 탄 기체가 대기권 재돌입이 불가능하며, 자신은 짧든 길든 우주에서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라이카는 발사 4시간 만에 고온과 스트레스로 죽었다. 러시아는 40년이 지나서야 안락사가 아니었다고, 라이카는 과열에 의해 죽었다고 고백했다. 우주에 먼저 도달하려는 열망이 40년간 숨겨온 희생이었다.


그들은 여전히 우주를 바라고 있었다. 더 빨리, 더 오래, 더 멀리.


로라스는 그런 이들의 라이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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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