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4)







 “웬일로 아무것도 안 넣고?”


로라스는 맞은편의 잔을 건너다보며 물었다. 드렉슬러는 심드렁히 대답했다.


 “그게 커피냐, 각성제지.”


내려놓은 잔은 로라스와 같이 짙은 갈색이었다. 갓 내린 커피향에 햇볕이 스몄다. 드렉슬러는 유리 너머의 풍광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다를 면한 연구기지는 관광지라 해도 좋을 만큼 경관이 빼어났고 날씨가 좋았다. 점심식사 후에 잠시 센터 카페에 앉아 있던 로라스 앞에,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드렉슬러가 불쑥 나타나기 전까지는 꽤 평온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하자면 몇 분 안 될 휴식마저 박살난 셈이었다.


 “가져가서 마시지 그러나?”


로라스는 잔을 흔들었다. 날이 슬슬 더워지고 있었다.


 “연구실에선 각성제라니까? 이런 것까지 연구실에서 마시면 인마, 나중엔 커피맛은 다 버리고 카페인 정제해서 처먹게 되는 거야.”


저자는 이따금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한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야.”

 “음?”

 “목에 그거 뭐냐?”


군번줄? 건드리자 고개를 저었다. 그거 말고, 금색, 어. 그거.


 “으엑.”

 “이상한 소리 내지 말게.”


드렉슬러는 대놓고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했다. 로라스는 그의 무례함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개신교였냐?”

 “가톨릭.”

 “더 정신나간 놈이잖아?”

 “고소하고 싶어지는군.”


재미없어, 드렉슬러는 손사래를 쳤다.


 “난 진짜 이해가 안 간다. 어떻게 비행사가 신을 믿냐? 너 설마 창조가 어쩌고 하는 놈은 아니지?”

 “아폴로 8호 기억 안 나나? 우주에서 성서를 읽어주던 비행사들 말일세.”

 “그건 쇼고. 하긴 아폴로 계획 전체가 쇼였지. 중요한 건 네놈이야. 난 요즘 세상에 신 믿는 멍청이를 내 연구실에 들이긴 싫거든.”

 “그러면 자네 연구실에 갈 수 있는 비행사는 몇 안 되겠군.”


로라스는 드렉슬러가 고민하듯 고개를 까닥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게 정말 이상하단 말이지.”


드렉슬러는 낯선 표정을 했다. 로라스는 저럴 때마다 별수없이 집중하게 되곤 했다.


 “너 같은 군바리도 있긴 하지만, 어쨌건 다들 과학자인데 왜 신을 믿지? 천문학은 결국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려줬잖아? 그런데 그걸 세상에서 가장 선명히 본 놈들이 정작 신에 매달린단 말이야. 미션 훈련할 때 포교시간이라도 있냐?”

 

로라스는 목에 걸린 십자가를 만지작거렸다.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러니까 로라스, 설명 좀 해봐라. 넌 좀 이상한 놈이잖아.”


늘 저것이 거슬린다. 로라스는 이마를 문질렀다. 순수한 암흑 가운데 천천히 회전하던 시야를 생각했다.


 “선명하지, 그래.”

 “대기가 없으니까.”

 “선명하고, 거대하고, 주위는 고요한 칠흑이지. 정말로 고요해. 무중량으로 떠가는 몸과, 90분마다 솟아오르는 태양과, 거대하고 아름답지만 아무 소리도 없는 모성을 바라보고 있자면……문득 깨닫지. 이 어처구니없이 광대한 공간에, 37m짜리 기계만이 우리 일곱의 생명을 담보한다는 사실을 말일세. 휴스턴? 자네들은 우리로부터 최소 300㎞는 떨어져 있어. 수직으로 말이야. 좁디좁은 왕복선 안에서 암흑을 바라보며 지내는 시간 동안 무엇을 생각한단 말인가? 자네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공간은 그만큼 죽음과 가까워. 아름다우면 아름다울수록 죽음이 산재해. 자네가 말해 보게. 인류가 가진 모든 기술을 쏟아부어 만든 저 기계장치가 우주 한복판에서 오작동을 일으키면, 우리는 누구를 믿어야 하지?”


드렉슬러는 머뭇거렸다.


 “두렵지. 군인인 나조차도, 전쟁터에 있었던 나조차도 두려워.”

 “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했네. 덕분에 조종사 자격요건인 1천 시간을 넘겨버렸지. 글쎄, 나는 어릴 때부터 우주비행사를 꿈꿨다거나 하지 않았어. 3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내가 여기 있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지.”


로라스는 십자가를 쥐었다.


 “고도가 올라가면……모든 게 작아지지.”

 “당연하잖아.”

 “올라가고 올라가서 지구마저 한 눈에 담을 수 있게 되면, 영상이나 모형과는 다른 진짜 우주가 느껴져. 내가 발붙이고 살던 행성 따위는 티끌만큼 작을 정도로 넓디넓은 진짜 세상.”


드렉슬러는 로라스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내가 말하려는 게 그거다. 이렇게 거대한 세계를, 지금도 어딘가에선 항성계가 수백 수천 개씩 생겨나고 있을 정도로 아득한 세상을 어떻게 한 존재의 의지가 만드냐고. 말도 안 돼.”

 “신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내게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인간이 땅을 만들어서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던가? 신은 길이야. 그 광막한 암흑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흔들릴 때마다 다잡게 해주는 절대적인 섭리 말일세.”

 “등대냐? 항로는 우리가 계산하잖아?”


로라스는 아까부터 드렉슬러가 잔에 손도 가져다 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지간히 궁금한가 보군. 여전히 무례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말했잖나. 두려움과 외로움에 사로잡힐 때, 기계마저 우리를 배신했을 때, 우리가 기적을 바라며 발버둥치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지?”

 “외로워? 혼자 있는 게 아니잖아.”

 “그래, 고도 300㎞의 우주 공간에 7명이나 있지.”

 “신이 너랑 농담따먹기라도 해주든?”


농을 치는 표정은 아니었다.


 “자네는 외롭지 않을 것 같나?”

 “글쎄,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뭔가?”

 “지상에서 외로운 놈들이 우주에 가서도 외로운 거야. 고독은 머릿수에 비례하는 게 아니거든.”


로라스는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드렉슬러는 로라스를 똑바로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저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거라면, 너는 사열 행진 때 가장 덜 외롭겠지. 하지만 그럴 리가 없잖냐?”


드렉슬러가 귀찮은 듯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스마트폰이 경보음 같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방해받았다는 얼굴로 화면을 돌려 표시된 내용을 읽은 드렉슬러가 별안간 창백해졌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뛰쳐나갔다.


로라스는 황망해졌다. 말은 해 주고 갈 것이지. 그러나 그가 달려간 방향이 연구동 쪽이라는 것과, 표정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포를 담고 있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로라스는 뒤늦게 일어서 드렉슬러를 쫓기 시작했다. 두 사람 모두 끝까지 마시지 않은 커피가 테이블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로라스는 E연구동 입구에서 드렉슬러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랐다. 연구실 쪽이었다. 로라스는 어디선가 익숙한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드렉슬러를 따라 달렸다. 그리고 연구실 앞에 멈춰선 드렉슬러가 스마트폰을 잠금장치에 대자 단번에 문이 열리는 것을 보고 혀를 찼다가, 문틈으로 연기가 뿜어나오는 광경에 경악했다.


더 경악할 일은, 드렉슬러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연구실에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로라스는 빨리 결정해야 했다. 문은 15초 뒤에 자동으로 잠길 것이었다.


 “빌어먹을.”


로라스는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불 붙은 연구실은 넓었다. 소리를 치기엔 연기가 너무 매캐했다. 정신나간 인간, 그깟 자료가 뭐라고, 로라스는 웃옷을 벗어 코와 입을 가리고 드렉슬러를 찾기 시작했다.


그의 책상엔 없었다. 어디지? 위성 모형? 데이터베이스 서버? 안쪽으로 한 걸음 들어가던 중, 들릴 리 없는 소리를 들었다.


 “로, 로, 여기, 이리 와.”


스페인어였다.


 “착하지, 말 좀 들어. 로, 로…….”


쿨럭이는 목소리는 분명히 드렉슬러였다. 로라스는 직감을 믿어보기로 했다. 라이카의 인큐베이터.


드렉슬러는 그곳에 있었다.


어리고 겁에 질려 자꾸만 구석으로 숨는 강아지에게 화상 입은 손을 뻗으며 계속해 부르고 있었다. 가까이 와, 그거 떼야 나갈 수 있어. 콜록거리며 중얼거리는 말소리는 스페인어였다. 로라스는 뜻밖의 광경에 잠시 넋을 잃었다가, 다가가 드렉슬러를 밀쳐냈다.


 “로라스?”

 “이거나 받게.”


스페인어로 짜증을 내자 드렉슬러는 얼어붙어 웃옷을 받아들었다. 로라스는 군용 나이프를 꺼내며 다시 말했다.


 “뭘 멍청하게 서 있나? 질식하기 전에 코라도 가려.”


강아지를 끌어당겨 튜브와 전선을 한 손에 쥐고 잘라버렸다. 약물이 튀었다. 강아지가 놀라 낑낑거렸다. 로, 드렉슬러가 불안한 듯 중얼거렸다. 한 손에 강아지를 들고, 한 손으로는 드렉슬러를 끌며 문으로 다가갔다. 드렉슬러는 연기 때문인지 휘청이기 시작했다. 로라스는 개폐 스위치를 발로 차버렸다. 강아지와 드렉슬러를 집어던지듯 문 밖으로 밀어내고 겨우 빠져나왔다. 어지러웠다. 뒤늦게 현장팀과 의료팀이 오는 것이 보였다. 늘 느리지.


강아지는 C동의 수의학연구소로 보내졌다. 단열재와 플라스틱이 타며 만든 가스 탓에 두 사람도 꼼짝없이 의료원행이었다. 로라스는 어지러운 머리를 꾹꾹 누르며 물었다. 이젠 신경쓸 필요도 없었으므로 스페인어였다.


 “로가 이름인가?”

 “……로드리고.”

 “이름 안 짓는다더니?”


드렉슬러는 시선을 피하며 말을 돌렸다.


 “스페인어 잘하네.”

 “부모님이 스페인 분이셨으니까.”


정확히 하자면 아버지만이었지만. 어머니는 스페인 이민 가정 출신이었다. 로라스는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면서도 집에서는 늘 스페인어를 썼다. 로라스, 알베르토, 그는 가족들이 불러주는 라틴계 특유의 억양을 좋아했다. 바깥에서는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그 목소리는 늘 가족, 그리움, 애정의 울림이었다.


 “난 스페인이 싫어.”


이 무례한 천문학자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모르겠군, 가보지 않아서.”

 “가보지 못한 곳은 늘 낭만적이지.”

 “동의하네.”


로라스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이 화재 때문인지 이 제멋대로인 학자 때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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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