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카와 이카로스(6)






건넛자리 군인은 보기보다 괜찮은 말상대였다. 병상에 붙잡혀 있어 주먹질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특히 그랬다. 항공역학이나 물리학 학위가 있답시고 빈약한 지식으로 경쟁하려 들던 머저리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드렉슬러가 모르는 분야를 자랑하지 않는 것도 괜찮았다. 그는 말을 하지 않을 때면 두 권뿐인 시집을 연거푸 읽었고 드렉슬러는 스톨리핀과 연구실 상황에 대해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사실 괜찮은 것은 하나 더 있었다. 의외의 분야였다. 드렉슬러는 메신저를 꺼버리며 물었다.


 “재밌냐?”

 “모르겠군.”


의료원이 갸웃하며 지나갔다. 스페인어를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 전체 인구보다 많다는 게 스페인어 사용자라지만 정작 센터엔 스페인어를 하는 놈들보다는 러시아어나 중국어를 하는 별종들이 더 많아서, 두 사람이 아무리 떠들어도 끼어들 놈이 없었다.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왼손에 들려 있는 낡은 문고판 시집을 바라보았다. 모서리가 둥글게 닳고 책등에 균열이 있는 것이 한두 번 읽은 수준이 아닌 게 분명했다.


 “하도 열심히 읽길래 대단한 거라도 있나 해서.”

 “음.”


로라스는 시집을 죽 훑어보더니 약간 확신 없는 어조로 대답했다. 화상이 아물어가는 손등이 붉었다.


 “볼 때마다 자네가 생각나는 시가 있긴 한데.”

 “나?”


별일이네. 드렉슬러는 코웃음을 치며 물었다. 근사한 거냐?


 “개미인데.”

 “이 새끼가.”


로라스는 웃었다. 책장을 넘기는 것이 그 시를 찾는 모양이었다. 그는 계속 책장을 걷으며 말했다.


 “별을 사랑하지.”

 “뭘 좀 아는 개미네.”

 “글쎄.”


표정이 이상했다. 드렉슬러는 그 표정이 자신이 그를 부르면 짓는 표정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이건 소설이 아닐세.”


무시당한 건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아 찌푸렸다. 로라스의 손이 멈추었다. 그렇게 읽어대면서 외지 못했을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잠깐 페이지를 훑던 로라스가 툭 던지듯 말했다.


 “죽어.”

 “어?”


그는 시집을 톡톡 건드렸다.


 “죽는다고.”


개미?


아, 이 등신은 진짜.


 “넌 어떻게 입만 열면 죽는 얘기냐!”


어처구니가 없어 소리쳤다. 그는 답잖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았다. 정말로 답잖게, 놀란 듯이. 드렉슬러는 처음 보는 얼굴에 도리어 당황하고 말았다. 똑바로 마주한 눈이 유난히 파랗다는 생각을 했다. 스페인에 가 본 적도 없다는 녀석이 왜 눈은 마드리드 하늘빛을 빼닮았는지 모를 일이었다.


한참 만에 먼저 입을 연 쪽은 로라스였다.


 “내가 그랬던가?”


요컨대, 고민하고 있던 모양이었다. 드렉슬러는 느낀 대로 되돌려주었다.


 “그렇잖냐? 로드리고니 개미니 라이카니 죄다 죽는 것들만 골라서.”

 “그런가……그렇군.”


로라스는 책을 내려놓았다.


 “그런 거만 읽어서 그래.”


드렉슬러는 로라스의 손 아래와, 머리맡에 놓인 시집을 가리켰다.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이 되려 생기가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괜한 소리를 한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로라스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시……말인가.”

 “작가란 놈들은 허구한 날 죽는 이야기만 하잖냐? 차라리 좀 더 멍청한 걸 하라고.”


난 안 멍청해서 예를 들어줄 순 없지만. 손사래를 치며 늘어지자 그제야 웃었다. 그는 책을 머리맡으로 치우더니 물었다.


 “라이카……아니, 로는 어떻다던가?”

 “내일쯤엔 보내준다더라. 그리고 로라고 부르지 마.”

 “그러면 라이카라고 하란 말인가?”

 “아오, 로드리고라고 하면 되잖아, 머저리야.”


로라스가 손을 포갰다. 깍지를 끼려다 화상이 거슬린 모양이었다. 드렉슬러는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에 투덜거렸다.


 “끔찍한 러시아 놈들.”

 “자네가 좋아하는 나라가 있기는 한지 궁금하군.”

 “나라?”


드렉슬러는 고개를 젖혀 생각해보았다. 허연 천장만 보였다.


 “ISS가 화성쯤에 나라를 세워주면 거긴 괜찮겠는데.”

 “ISS로는 화성에 못 가는데.”

 “내가 그걸 모르겠냐, 말을 못해 진짜.”


로라스는 이제 한결 담담히 드렉슬러를 보고 있었다. 드렉슬러는 머리를 살짝 긁었다.


 “뭐, 여긴 살만은 하지. 넌 러시아는 가지 마라.”

 “러시아?”

 “으음, 아냐, 가든 말든 내 상관할 바는 아니지. 가서 죽게 굴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

 “얼마나 있었나?”


주먹질을 하지 못하니 듣기 싫은 소리는 끊어버린다. 군인 특유의, 아니, 그보다 더 강한 어조는 아무리 말을 이으려 해도 놓아주지 않는다. 타고났다는 건가, 군재를 타고나면, 뭐냐, 살인자냐.


 “6개월.”

 “소유즈?”

 “그렇지. 사실 미르에도 관심이 있긴 했는데……알려줄 것도 아니고 내가 바다에 뛰어들 수도 없고.”


미국에 베르너 폰 브라운이 있었다면 소련에는 세르게이 코롤료프가 있었다. 우연이었는지, 그들이 몸담은 국가의 성향을 반영했는지 새턴Ⅴ와 R-7은 둘 다 사람을 우주에 올려놓는 데는 성공했으나 정 반대의 길을 걸었다. 새턴Ⅴ는 그 엄청난 용량과 추진력으로 달까지의 38만㎞를 왕복하게 해 주었지만, 110m에 2,700여 톤이라는 규모가 미국 국가 재정을 위협할 수준이었기에 1972년 아폴로 계획의 중단과 함께 더 이상 사용되지 못했다. 로켓은 우주왕복선과 달리 일회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R-7은 최종 개량에서도 50m를 넘지 않았기 때문인지 달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소유즈 우주선과 함께 50년이 지난 지금도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었다. 최종적으로는 세르게이가 이긴 것일까?


 “소유즈 타봤냐?”

 “아니, 그러고 싶진 않군.”


하기야, 왕복선 조종사가 소유즈를 탈 일이라면 ISS에서 사고가 났을 때밖에 없겠지. 지금이야 안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소유즈의 첫 비행은 처참했다.


 “넌 말이다.”


묻고 싶어진 것은 첫 소유즈의 희생자인 코마로프가 공군 대령이었기 때문이다.


 “죽을 게 확실한 비행을 지시받으면 할 거냐?”


로라스가 고개를 기울였다.


 “소유즈 1호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건가?”

 “눈치 꽤 좋네.”


기술진과 비행사들은 이미 이 우주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국은 혁명 50주년 기념일에 상징적인 행사를 원했고 비행은 강행되었다. 코마로프만이 탑승한 소유즈 1호는 우주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으나 예상대로 고장을 일으켜 동력이 전달되지 않아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출발 전부터 죽음을 각오했던 그는 아내와 통화하며 아이들을 부탁했다. 대기권에 진입한 소유즈 1호는 격렬히 요동치는 선체 때문에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아 시베리아 한복판에 엄청난 속도로 충돌했다. 코마로프는 격돌하는 순간까지 의식이 있었고, 이 사태를 불러온 관료들을 저주했다고 한다.


 “아마도.”


로라스는 드렉슬러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래야만 한다면.”

 “뭐?”


드렉슬러는 황당해져 되물었다. 가장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였기 때문이다. 부조리의 당위라니?


 “나 하나로 다른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아, 그 잘난 유리 가가린. 드렉슬러는 화가 났다.


 “대가가 너무 비싸지 않냐?”

 “대가라.”

 “그건 유리 가가린이 처박히고 블라디미르 코마로프가 처박히고 하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R-7은? 소유즈는? 그걸 발사대에 세우기까지 관제소며 연구원들이 한 노력은? 그놈은 그걸 전부 싸안고 추락해버린 거야.”


충분한 명성과 가정을 갖고 있었던 코마로프가 소유즈 1호의 조종을 수락한 이유는 그가 거절했을 경우 탑승하게 될 예비 조종사가 “최초의 우주인”이자 자신의 친구인 유리 가가린이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소유즈 1호에서 친우를 내리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코마로프가 시베리아에서 산화해버리고 1년 뒤, 유리 가가린도 신형 전투기의 시험비행 중 추락사했다.


로라스가 물어왔다.


 “자네라면 어떻게 했겠나?”

 “뭐?”

 “마치 그 비행을 중단시킬 수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거기엔 두 가지밖에 없었어. 타거나, 도망치거나.”


드렉슬러는 짜증을 냈다.


 “누가 들으면 67년에 모스크바 있었던 줄 알겠다?”

 “이상하군.”


로라스는 한숨을 쉬었다. 드렉슬러는 그 모습이 못마땅했다.


 “러시아에 있어 보니 어떻던가? 자네가 그리 학을 떼는 걸 보니 효율적인 조직은 아니었을 것 같군.”

 “뜬금없이 그건 왜.”

 “말해 보게.”


또 그 말투. 강압과는 다른 이상한 힘의 어조였다. 의도는 대충 알 것 같았다. 확신할 수 없다는 것이 신경을 곤두서게 했다. 남의 눈치를 보지는 않았지만 남을 파악하는 데 서툴다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래서 더 답답했다.


 “똑같지 뭐. 공군, 관료, 돈은 모자라고 윗대가리들은 결론도 끝도 없는 회의만 계속하면서 플랜이란 플랜은 모조리 취소시키고.”

 “그리고?”

 “공군……그래, 그놈의 군대. 지금이 60년대도 아니고 대체 왜 군이 연구소를 장악하려는 건데? 도움은 하나도 안 되면서.”

 “여기도 별반 다르지 않아.”


드렉슬러는 곧게 자신을 향하는 푸른 눈이 싫었다. 무언가가 자꾸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그러지 않았잖냐? 창립 10년만에 사람을 달에 보낸 조직이야. 낡아빠진 거하곤 거리를 둬야 하는 거 아니냐?”

 “안타깝게도 군대와 사제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조직이라 말이지.”

 “그래서 네가 그 모양이냐? 신을 믿는 군바리라서?”


로라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더니 한껏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했다.


 “그 낡은 군인은 우주왕복선을 몰고, 신식이신 학자께선 병실 신세로군.”

 “패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지 그러냐?”

 “걱정 말게, 의료동 나가는 순간 도로 여기로 보내 줄 테니.”

 “예고해줘서 고맙다, 미친 새끼야.”


드렉슬러는 돌아앉아 버렸다. 한참 뒤에 슬쩍 건너다보았을 때 로라스는 누운 채 천장 어딘가를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괜스레 신경이 쓰여 타블렛을 만지작거리는데, 목소리가 건너왔다.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시덥잖은 이야기를 했다. 드렉슬러는 연구실에서 진행중인 기상위성 프로그램과, 센터 주변의 맛대가리 없는 레스토랑과, 존경할 뻔하다 경멸하게 된 교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로라스는 초음속기를 처음 몰아 보았을 때의 느낌과, 이국의 사막을 밟았을 때의 황량함에 대해 말했다. 전쟁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았고, 우주왕복선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다. 드렉슬러가 한창 신이 나 말하는 동안에는 조용히 집중해 주었고, 가끔, 아니 자주 논쟁을 벌이기는 했지만 무리해 꺾으려 들지는 않았다.


의료진은 마침내 두 사람을 병상에서 풀어주었다. 로라스는 가방을 집어든 드렉슬러에게 마치 지나가듯 한 마디를 던졌다.


 “고생했네.”


드렉슬러는 여상한 한 마디에 대답할 말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그러다, 지금 등을 돌리고 제 짐을 추리는 그에게 갚을 빚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라스.”


여전히 저 눈은 싫었다. 드렉슬러는 머리를 긁적였다.


 “고맙다.”


그때 와줘서, 라고는 덧붙이지 못했지만 알아들은 듯 했다. 로라스는 먼저 병실을 나가며 말했다.


 “사람은 살려야지 않겠나.”


드렉슬러는 그것이 어느 논쟁의 답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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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