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31 초반부 수정






드렉슬러는 슬쩍 관제실 문을 열어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발사 당일의 관제실은 혼잡하기 그지없어 한두 명쯤은 끼어 있어도 알아채지 못했다. 혹여 누군가 알아보더라도 위성의 핑계를 대면 될 일이었다. 관제실 스크린에 발사대에 고정된 리버티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우주왕복선의 본체, 궤도선은 거대한 액체연료탱크에 매달려 있었다. 오렌지색의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액체연료탱크의 가운데에서 궤도선의 메인엔진으로 추진제가 주입된다. 바꾸어 말하면 궤도선은 700톤짜리 액체산소·액체수소 폭탄을 매달고 이륙하는 셈이었다.


궤도선보다도 두툼한 외부탱크 양 옆으로 SRB, 고체연료부스터가 하나씩 달려 있었다. 액체연료탱크까지 합치면 중량 2천 톤, 추력 3천 톤에 육박하는 순수 연료. SRB는 이륙과 동시에 점화되어, 내부의 모든 연료가 소모되는 2분 11초 지점까지 계속해 타오른다. 꺼뜨리는 방법은 없다. 각각 590톤의 SRB는 전부 불타 고도 40㎞를 돌파하고 분리되거나, 통제를 벗어난 응력을 선체에 가해 폭발시키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발사에 대한 매뉴얼이 유난히 복잡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주왕복선에는 그 흔해빠진 낙하산이나 승무원 사출장치가 없었다.


그런 불안정한 기체에, 로라스가 있었다. 드렉슬러는 스크린 속의 리버티호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그저 네가 무사하기를. 


관제실이 더욱 소란해졌다. 본격적인 이륙절차가 시작되었다. 로라스는 이미 2시간 전에 조종실에 묶였을 것이다. 10분만, 10분만 버티면 되었다. 이 모든 준비는 저 새하얀 선체가 불길을 뿜기 시작하고서 8분 30초까지를 위해서였다. RTLS, TAL, AOA, ATO 같은 온갖 발사취소 프로그램을 위해 세계 각지에 담당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아무 소용이 없어야만 했다.


비행담당관이 시스템 체크를 시작했다.


 “FDO 완료, CAPCOM 완료, LCC에 알린다. 발사 준비 완료.”


항공역학, 지상통신 준비 완료. 발사통제센터에 알린다. 발사 준비 완료. 이곳에서 일하려면 약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이를테면 발사 30분 전이라고 하지 않고 T-30분이라고 하는 것처럼.


리버티의 엔진이 가동되었다. 구르릉 하는 소리가 들렸다.


T-6, 엄청난 불꽃이 리버티를 집어삼킬 것처럼 뿜어져나오고서, 뒤늦게 굉음이 카메라를 넘어 다가왔다. 선체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3천 톤에 육박하는 추력을 견디지 못하고 솟구치려 몸을 뒤트는 것이다. 곧 볼트가 끊어지고,


리버티가 솟아올랐다. 그가 말했다. 휴스턴, 리버티호는 출발하겠다.


올라가. 그렇게 궤도까지, 전부 벗어버리고 올라가. 어떤 것도 너를 옭아매지 못할 곳까지.


그리고, 그러고 나면,


이곳으로 돌아와.


드렉슬러는 계속해 날아오르며 선체를 뒤집는 리버티를 바라보았다. 관제소의 담당관들은 계속해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궤도비행을 시작하기 위해 메인엔진을 소화시키는 MECO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요컨대 발사 8분 30초 이전엔 문제가 산재했다.


괜찮아.


145번째 발사야. 그 중에 사고는 단 두 번 뿐이었어.


드렉슬러는 입가를 그러쥐었다. 차라리 목소리라도 더 듣고 싶었다. 왜 이번 비행에는 아이맥스 카메라를 안 가져가는 거지? 홍보물도 부족하면서…….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SRB가…….”

 “그게 어쨌는데!”

 「휴스턴, 과열 메시지가 출력된다. 센서 이상인가?」

 “노즐 파열 같습니다.”

 “1번 엔진 정지!”

 “기체가 서쪽으로 휘고 있습니다!”


드렉슬러는 벌떡 일어섰다. 안돼, 로라스, 바다로, 바다로 가야 해. 너도 알잖아.


 “내륙인가?”

 “20㎞ 남았습니다.”

 「FTS 상황인가?」


침묵.


 “선체가 심하게 요동칩니다.”


안 돼, 로라스. 하지 마.


 “얼마나 남았지?”

 “2㎞, 곧 노스캐롤라이나로 진입합니다.”

 “고도는?”

 “28㎞.”


하지 마, 제발.


비행차단장치(Flight Termination System, FTS)


말은 멀쩡한 이 장치는 왕복선 연료탱크에 장착된 폭탄을 가리켰다. 왕복선이 내륙, 즉 도시 위로 추락하거나, 혹은 잔해가 인근에 피해를 미치리라 여겨질 경우 연료탱크와 함께 궤도선을 공중에서 가루로 만드는 세 개의 다이너마이트.


 「휴스턴, 수동으로 고도를 올리겠다.」

 “그랬다가는 기류 때문에 선체가 찢어질 수도 있어!”

 「FTS가 가능한 위치까지 쓸려가라는 뜻인가?」

 “1번 엔진은?”

 “아직입니다.”

 “RSO."


안 돼.


관제소는 리버티호를 폭파시킬 생각이었다. 그를, 로라스를 하늘에서 재로 만들어버리려 하고 있었다. 우리가 무엇을 감수하며 날아오르는지도 모를 누군가를 위해, 알고 있었다. 윤리, 그 빌어먹을 윤리.


 “로라스!”


비행감독관에게 뛰어들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음성이 돌아왔다.


 「드렉슬…….」

 “Vuelve a mí.”


돌아와, 내게. 내가 있는 곳으로.


드렉슬러는 떠밀렸다. 2초나 되는 시간이었을까. 관제실의 비행통제관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로라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Miserére nobis.」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리버티호가 수동 조종으로 변환했습니다!”

 “무슨 미친……지금 리버티호는 시속 3200㎞야! 어쩌려는 거야!”


순간, 푸른 센서가 불을 밝혔다.


 “SRB 분리! 리버티가 방향을 꺾었습니다!”

 「휴스턴, 엔진과 방향타 일부가 화재로 손상을 입었다. TAL을 요청한다.」


비행감독관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망가진 SRB를 달고 2분 11초를 버텨냈다. 기적이었다. 불 붙은 SRB는 떨어져나가며 내열타일과 방향타를 손상시켰다. 이대로 우주에 나갔다가는 그대로 불에 구워질 것이 뻔했다. 로라스는 다시 요청했다. 대서양 횡단 비상착륙 모드를 가동시켜 달라고. 리버티는 로라스의 손에 의해 대서양 상공에서 천천히 속력을 줄이고 있었다. 비행감독관은 마침내 로라스의 주장을 승인했다.


 “리버티호, TAL을 가동하라.”


선체의 제어권이 다시 리버티호의 메인컴퓨터로 넘어왔다. 컴퓨터는 관제소의 스크린에 예상 항로를 출력했다. 소요시간 33분. 목적지 스페인, 사라고사.


 “사라고사에 연락해. TAL 상황이라고.”

 “알겠습니다.”


사라고사에 TAL을 위해 대기중일 직원은 이제 공항을 통제하고 승무원 전원의 여권을 소지한 채 리버티의 착륙을 기다릴 것이다. 왕복선을 옮기기 위해 보잉 747기가 사라고사로 날아가고, 그는 직원에게서 여권을 받아 애틀랜타 공항에서 이곳으로,


드렉슬러가 있는 곳으로.


드렉슬러는 결국 주저앉았다. 그는 살아 있었다.

 




오랜만에 TV를 보았다. 간만에 터진 우주왕복선 사고가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발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놈들이 센터며 공항을 새까맣게 에워쌌다. 서너 번의 대형사고를 거치고, 다행히 센터는 날파리들에 대처하는 방법을 숙지했다. 승무원의 가족은 휴스턴에서 안전하게 보호받았고, 인터뷰는 카메라에 이골이 난 홍보관이 맡았다. 기술적 오류, 고칠 수 있음. 그는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두 가지 말만을 반복했다.


하지만 사라고사에 도착한 승무원들은 그 정도로 존중받지 못했다. 드렉슬러는 뉴스 보도 너머로 로라스의 얼굴을 보았다. 피곤해 보였다. FTS가 가동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냐는 무례한 질문에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영웅이 부족한 시절이었고, 시속 3200㎞짜리 글라이더를 관제소의 지시마저 무시하고 비행해 승무원 전원을 살려낸 선장의 이야기는 훌륭한 가십거리였다.


그는 입국하자마자 기자들을 간신히 뚫고 센터로 돌아왔다. 센터에서는 청문회와 사고조사위원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절대적이어야 할 관제소 지시를 어긴 죄가 어깨에 지워졌고, 승무원들을 구한 공이 다른 어깨에 얹혔다. 모두가 짐이었다. 그는 리버티호의 선체가 후송되자 분석을 위해 철야를 해야 했다.


드렉슬러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두 달이 지나서였다.


로라스는 조금 피곤한 것 외에 달라진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드렉슬러는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을 갈망하고 있었다. 그것이 몸서리쳐지도록 기뻤다.


 “늦었네.”


그는 진심으로 미안한 듯 사과했다.


 “사과하지.”

 “그래, 그래야지.”

 “자네가 열심히 연구한 위성인데……망가져버렸어. 정말 미안하네, 선체가…….”


드렉슬러는 울컥, 화가 났다.


 “넌 중요한 게 그거냐?”


로라스가 당황한 듯 어물거렸다. 드렉슬러는 한 발짝 나서며 소리를 질렀다.


 “죽을 뻔 했다고! 조립빌딩 놈들인지 발사통제소 놈들인지 일을 어떻게 해놓으면 SRB가 또 그 지랄이냐고! 그래놓고, 뭐? FTS? 그 빌어먹을 RSO가 널 노스캐롤라이나 하늘에서 산산조각내려고 했다고! 넌 그냥 거기 탔을 뿐인데! 그것도 대타로! 그걸 시킨 게 저기 앉은 늙은이인데 왜 네가 터져야 하는데? 넌 또 왜 선체 찢어진다는 거 알면서, 그, 그, 미친 짓을, 씨발, 빌어먹을…….”

 “드렉슬러…….”

 “알아, 개자식아. 네가 그러지 않았으면 RSO가 망할 스위치를 눌렀겠지. 하지만,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로라스가 어쩔 줄을 모르며 바라보았다. 파란 눈이 걱정만을 담고 자신을 향했다. 저 남자를 사랑했다. 저 남자를 갖고 싶었다. 그것만을 생각했다. 키스했다. 그날 그가 해주었던 것처럼. 그의 몸이 굳었다가, 격렬하게 드렉슬러를 껴안았다. 그는 분명히 제게 사랑을 토로할 테고, 그러면 이 남자는 정말로 드렉슬러의 것이었다.


기뻤다.


짤그랑.


유쾌하지 않은 소리가 났다. 떨어지기 싫은데.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 드렉슬러와 로라스는 말문이 막혔다.


 “그런……거였어요……?”


연구실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었다. 잔을 떨어뜨린 코브가 어떻게든 납득해보겠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저……전 괜찮아요!”


닥쳐, 앨튼.


스톨리핀은 말없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내 연봉은 이미 굶어죽기 직전이야!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가일과 소렐은 아예 넋이 나간 것 같았다. 이걸 어떻게 하지. 드렉슬러의 머리로도 해결이 안 되는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류 지성에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의외로 무식한 비행사였다.


손 잡게.


어쩌려고.


도망쳐야지.


뭐?


천문대를 갈까, 오늘은.


나쁘지 않네.

















+


완결엔 잡담이죠 안녕하세요 꼬아레입니다

제가 이거를...머냐 한 4월 13일쯤에 아 우주비행사 롸스랑 천문학자 드렉 보고십따~

해놓고

셀프로

치여서


근데 아는 게 없잖아 내 지식은 스타워즈(영화만 봄) 스타트렉(영화만 봄) 그래비티(보기만 함) 이게 전부라고


간다 나 도서관

그렇게 5권을 빌려다 읽고 안되는건 날조를 하고 그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아참 중간에 나오는 꼬부랑글씨는 드렉슬러가 스페인어고 로라스가 라틴어입니다 맞는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잘 아시는 분이 제보 좀


언제나 그렇듯 결말이 젤 먼저 구상한 부분이고 나머지를 어찌 채우지 하다가 의외로 우주비행사들이 사는 게 어마어마하게 위험하고 전쟁같고 냉전시기엔 실제로 전쟁의 일부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왠지 무게잡는척하는 글이 됐는데 원래 정체성은 개그였는데 음 저는 개그는 안되는걸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원해주셔서 제 스스로도 놀라운 속도로 썼네요

이게 썰로 굴러다니고있을 때 뽐뿌질을 해준 쏠즈와 사늑님, 시작하니 다큐멘터리까지 추천해주신 에버님께 특히 감사드립니다...쏠즈는 두번감사 세번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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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