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업서

사퍼/로라드렉/단편 2015. 4. 10. 20:57


* 리퀘스트 내용 : 트와일라잇 광장멤버 회식

* 결과물의 상태가?

* 저는 마틴을 좋아합니다. 딱 셋 있는 풀성구 캐릭터입니다. 정말입니다.








“…….”

“…….”

“…….”

“……크흠.”


누구냐, 회식 하자고 한 새끼.


“뭐라도 좀 시켜야지 않겠어? 아, 고마워요. 술은 어쩔까?”

“사양하지.”

“무인이 술을 거절하다니, 허허, 그러면 얕보인다네.”


할배는 오늘 밤길 조심하시구랴.


“닭고기랑, 음, 늦었으니 생선은 빼고. 과일이나 사탕 있으면 좀 주시고요. 드렉슬러, 돼지고기 시켜 줄까?”

“왜 나한테 묻냐?”

“스페인 사람이니까?”

“아일랜드 놈들 감자만 처먹고 뒈지는 소리 하네.”

“농담도 못해.”

“새끼돼지 구이 같은 걸 시키면 저기 꼬마가 동족상잔이라고 괴로워할 거라고.”

“드렉슬러!”

“농담도 못하냐?”


재단 꼬마가 험악하게 노려본다. 주근깨에 동글동글한 볼 달고 노려봐야 하나도 안 무섭단다. 아, 그러고 보니 독심술사랬나. 목석 검사님에 마녀 비서님이니 열심히 읽어보아야 소용없을 테고. 나? 흐응.


“챌피 군,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괜찮아?”

“네? 네, 네, 괘, 괜찮습니다…….”

“이녀석 때문에 그래? 하여간 입이 험해 놔서, 미안해.”

“아니, 아닙, 아닙니다…….”


흐응.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드렉슬러, 그만, 보채게…….

―미친, 씨발, 그만 빨아대고 박기나 해!

―하지만 자네가…….

―셋 셀 때까지 안 박으면 내가 박는다 씨발놈아.


“우욱……!”

“챌피 군?”

“저, 저, 무, 물 좀 마시고 올게요!”


하나 치웠고.


“좀더 가볍게 주문할 걸 그랬나? 속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

“그러게 야밤에 집이나 보내지 이게 뭐냐?”

“요즘 물건 수급은 어때요?”


무시하기로 하셨구만.


“별 일이야 없지. 물량이 넉넉하지 않다는 걸 전제로 하고 시작한 사업이니. 그쪽이야말로 모자라진 않나? 우리야 기간별로 물건 돌리지만, 그쪽은 상설이잖나?”

“비교할 일인가요, 이게. 우리야 영리사업인걸요.”


마녀는 퍽 상냥히 웃어보였다. 옆에서 보자니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저런 얼굴로 어중이떠중이들 주머니를 터는 거구만.


“그쪽은 은행이라 하지 않았나?”


나이 먹어도 형형한 눈길이 표정없는 검사를 향한다. 별로 대답할 생각이 없어보이기에 대신 말해주었다.


“은행이란 게 돈놀이의 정점 아닙니까. 고리대금을 우아하게 쓰면 은행이지.”

“허허, 젊은이 말을 재미있게 하는구만.”

“그렇지? 이놈들이 뭘 몰라.”

“……드렉슬러.”

“아, 조노비치 양. 내 빵에 왜 불이 붙었는지 설명해줄래?”


의자 끌리는 소리.


“돌아가겠다.”


다이무스가 검을 챙겨 일어섰다. 마침 재단 꼬마가 시퍼런 얼굴로 돌아오는 참이었다. 여기서 끝내면 딱 좋겠는데.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따라나서려는데,


“……전부 앉아줄래?”


씨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의미없는 자리로군.”

“앉아 주시죠, 다이무스 홀든 씨?”


망했군. 잿가루가 된 빵조각이 놓인 접시를 멍청하게 내려다보았다. 명랑한, 분명히 가장한 목소리가 쨍쨍하게 좌중을 짓눌렀다.


“이렇게 모이기도 힘든데 쉽게 파해서야 되겠어요? 그렇죠, 브루스 씨?”

“흠흠.”

“그렇죠, 챌피 군?”

“네? 아, 그렇네요…….”

“안 그래, 드렉슬러?”


집에 가고 싶습니다. 집에 보내 줘. 아니, 여기만 아니면 야근이라도 할게. 야, 재단 꼬마. 들리냐? 빨리 동의하란 말이야.


“정말이지 어려웠지 뭐예요. 재단에서 능력자들의 화폐 통일을 제안했을 때, 그래요. 솔직히 말해 우리로서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어요. 그랑주화는 순금이 아니라서 실물가치가 낮으니까요. 하지만 재단이 옳았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하지 않나. 능력자와 비능력자의 조화를 꿈꾸는 우리들인데, 능력자 간에 차별이 있어서야 쓰나.”

“그건 연합의 이상에 가깝군.”


묵묵히 앉아 있던 다이무스가 툭 던졌다. 어지간히 비위가 상한 모양이었다. 이러다간 마르크스까지 튀어나오겠어.


“솔직히 전 어떤 게 옳은지 잘 모르겠어요. 요즈음엔 너무 시류가 복잡하니까요. 여하튼, 은행은 저희로서도 재단과 비슷한, 능력자들을 도와줄 만한 일이 없을까 하다가 착상하게 된 사업이었어요.”


모르긴 퍽이나.


“돕는다라…….”

“물론 저희는 기업인 이상 완전히 무상으로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죠. 재단도 그랑주화를 받잖아요? 아, 나무라려는 건 아니에요. 아시죠?”

“자금이란 언제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지.”

“그래요. 어찌 되었든 저희는 재단과 겹치지 않으면서 능력자들을 도울 방법을 찾았죠. 그 결과가 이거구요.”

“겹치지 않는다는 건 어폐가 있네요.”


재단 꼬마의 말에 타라는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전형적인 ‘내 담당이 아니라 자세한 건 모르겠어요’의 태도였다. 과연 비서실의 마녀다웠다.


“회사에선 우리 제안을 수용했다고 말했죠. 그랑주화를 이공간 내에서의 공용화폐로 한다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지금 회사에서 운영하는 곳들은 그랑주화가 아니라 상용되는 화폐나 현물을 요구하고 있어요. 우리는 이 이공간에서라도 능력자들이 능력만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를 바랐어요. 현실과 똑같은 차등이 생겨난다면 고생해 그랑주화를 화폐화한 의미는 없어져요. 그렇지 않나요?”


어린애가 말은 줄줄 잘 하네. 타라가 곤란한 듯 한숨을 쉬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고기며 과일이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은행이 취급하는 물품들도 그래요. 사실 이미 타라 씨가 우리가 그랑주화와 교환해주는 물품을 취급한다는 건 알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흐음.”


마틴은 잠시 옆자리의 브루스를 바라보았다. 브루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일종의 도박이죠.”


이야, 세게 나오는데.


마녀는 도박사에 검사께선 고리대금업자라, 이거 회사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구만.


타라는 슬슬 짜증이 나는 듯했다. 그녀가 머리카락을 쓱 걷어올리더니 웃었다.


“부정하진 않겠어요.”

“그것이 ‘도움’인가요?”

“그러면 묻죠. 이공간에서의 이 행위가 현실의 능력자들의 신체나 정신에 악영향을 끼치기라도 하나요?”

“그건…….”

“그래요. 우리는 기업이에요. 우리가 능력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데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요. 우리는 정당하기만 하다면 어디서든 이익을 취해요. 그게 잘못됐나요?”


아, 집에 가고 싶다.


몇 번째일지도 모를 생각을 속으로 중얼거리는 찰나,


“드렉슬러, 여기 있나?”


정말로 생각지도 못한 구세주가 문을 벌컥 열고 나타났다.


“아, 으음, 이건 미처 몰랐는데…….”

“로라스?”


교회도 안 다니지만 뭐가 어떠랴. 지금의 내게 저 바보보다 더한 구세주는 없었다. 냉큼 일어서 옷깃을 잡아끌었다.


“무슨 일인데? 급해? 나가면서 설명해줘.”


다 들리도록 소리지르며 굳어버린 등을 떠밀고,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나가자.”


딱 로라스에게만 들릴 정도로 속삭이고서,


“미안, 먼저 간다!”


로라스를 보더니 얼굴이 흙빛이 된 재단 꼬마에게 음흉하게 웃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안녕, 꼬마야. 난 오늘도 불타는 밤을 즐겨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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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아레